바다에 묻힌 조선인 136명…한일 '조세이 탄광'으로 과거사 협력 개시

사고 84년 만에 정상회담 의제…공동 유해발굴·봉환 추진 주목

2019년 3월 촬영된 조세이 탄광 추도비. 좌측에 '한국·조선인 희생자', 우측에 '일본인 희생자'라고 쓰여 있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갈무리)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한일 양국이 오는 13일 정상회담에서 일제강점기 '조세이 탄광'(장생 탄광) 수몰 사고 문제를 인도적 협력 의제로 공식 논의하기로 하면서 84년간 사실상 잊혔던 비극이 재조명되고 있다.

청와대는 9일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조세이 탄광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협의의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유해에 대한 DNA 조사 등에서 새로운 진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조세이 탄광 문제를 둘러싼 유해 조사와 수습을 한일 양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공동으로 논의·협력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는 1942년 2월 3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해안에서 약 1㎞ 떨어진 해저 갱도에서 발생했다. 당시 탄광은 해저 아래 약 37m 지점의 갱도를 무리하게 굴착해 운영했으며, 이는 일본 법정 안전 기준보다 얕은 깊이였다. 이러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갱도 천장이 무너지며 바닷물이 대량 유입돼 내부 노동자들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수장됐다. 이 사고로 총 183명이 희생됐는데, 이 가운데 약 136명은 조선반도에서 강제 동원된 노동자들이었다.

사고 직후 현장에서의 대응은 비인도적이었다. 탄광 회사는 바닷물의 추가 유입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갱구 입구를 콘크리트로 봉쇄해 구조를 시도하는 대신 갇힌 노동자들의 생명을 사실상 단절시켰다. 희생자들의 유해는 차가운 해저에 남겨졌고, 사고 사실은 일본 언론과 정부에 의해 은폐되면서 실제 피해 규모는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전후 일본 정부와 언론은 이 사건을 "대부분 구조됐다"고 축소·은폐했고, 희생자와 유족의 기억은 사회 차원에서 오랫동안 배제됐다. 희생자들의 유해 수습과 사고 진상 규명은 이후 수십 년간 민간 주도의 노력으로만 이어져 왔다.

지난해 4월 1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조세이 탄광 유해 발굴 현장.(장생탄광 희생자 귀향 추진단 제공)

전환점은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된 시민사회 움직임에서 나타났다. 1991년 일본 시민단체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과 한국 유족들이 함께 진상 규명과 유해 발굴을 목표로 활동을 이어왔다. 2013년에는 시민 성금으로 추도비가 우베에 세워졌고, 2024년 10월에는 민간 주도로 수몰된 갱도 입구를 여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후 잠수 조사 과정에서 인골로 추정되는 유해 일부가 발견돼 경찰에 감정을 의뢰하는 등 유해 발굴에도 실질적인 진전이 시작됐다.

재일 시민사회뿐 아니라 한국 측 유족과 시민들도 정기적으로 현장을 찾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해 왔다. 지난해 2월에는 약 450명이 참석한 추모행사가 열렸으며, 한일 양국의 유족과 관계자들이 참여해 희생자들의 기억을 공유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 당국도 과거사 문제에 대한 협력 기조를 재확인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최근 뉴스1과 진행한 신년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가 순항 중이라는 평가 속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 "앞으로 양국이 함께 공감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과거사 사안들을 적극 발굴하고 진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 장관은 "과거사 현안에 있어 정책의 일관성과 양국 간 신뢰를 고려하면서 대처하면서도 피해자와 유족, 그리고 국민의 입장도 헤아리고자 한다"고도 했다.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를 둘러싼 유해 발굴 문제는 그동안 일본 정부가 "위치와 깊이 등이 불분명해 안전 문제 등으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어렵다"며 사실상 민간에 맡겨 왔던 사안이다. 이에 대해 현지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조세이 탄광 사고가 군사적 전투와 무관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한 참사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본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책임 이행을 요구해 왔다.

일련의 상황에서 이번에 조세이 탄광 문제가 한일 정상 차원에서 다뤄지면서 관련 사안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일 공동 유해 발굴·봉환 추진 등을 통해 미완의 과거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는 분석이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