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투쟁'으로 과거사 문제 '지원군' 된 中…한미일 '갈라치기'는 부담

李, 방중 일정 자체가 일본에게는 '부담'
'한미일 틈 벌리기'…"中의 전략적 의도는 인지해야"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빈만찬을 마친 뒤 작년 11월 경주 정상회담 때 선물 받은 샤오미 스마트폰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6.1.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중국이 이재명 대통령의 국빈 방문에서 '항일 투쟁' 역사를 공통분모로 한국과의 유대감을 높이는 행보를 보였다. 이는 이 대통령이 중국 방문 후 일본을 찾는 것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분석이 8일 제기된다. 대만 문제로 갈등하는 일본에 '한중 밀착'을 내세워 카드로 압박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라는 것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5일 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80여 년 전 한중 양국은 막대한 민족적 희생을 치르며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는 승리를 거뒀다"라며 한중 간 역사적 공통분모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도 "한중은 일본의 군국주의 침략에 공동으로 맞서 싸웠다"며 중국 내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보호해 준 것에 사의를 표했다. 이 대통령은 방중 마지막 일정으로 건립 100주년을 맞은 임시정부 청사를 직접 둘러보기도 했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우리의 적' 이미지 부각…李 대통령 방일에 부담 주기

이에 앞서 중국의 관영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지난해 12월 31일 자 보도에서 이 대통령의 임시정부 청사 방문 일정을 조명하며 탄생 150주년을 맞는 백범 김구 선생을 "한국의 상징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일제강점기 항일 투쟁의 핵심 인물"이라고 소개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역사 문제에 대해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며 한국과의 밀착도를 높이기 위한 중국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중국의 이같은 '호의'는 일본에 대한 자연스러운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 한일 간에도 군국주의 일제로 인한 과거사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독립 역사인 '항일 투쟁'의 역사를 부각할 수 있는 무대를 중국이 마련해준 것은 중일 갈등에 있어 한국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해 주기를 원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달 중순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이 중국의 입장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전달할 것을 기대·압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가능성 발언으로 지난해 11월 촉발된 중일 갈등은 해가 지났지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중국은 지난 6일 "일본 군사 사용자와 군사 용도 및 일본 군사력 제고에 도움이 되는 기타 최종 사용자 용도의 모든 이중용도 물자 수출을 금지한다"라며 대일 수출 통제 조치를 단행했다. 이는 일본이 가장 필요로 하는 희토류 수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일본의 희토류 의존도는 55%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국은 전날인 7일엔 일본산 디클로로실란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히며 경제적 제재를 강화했다. 디클로로실란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실리콘 박막 증착에 필수인 고순도 실란계 가스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30일 경북 경주 APEC 정상회의장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日에 과거사 문제 제기 '기회'인 측면도…"한미일 갈라치기는 피해야"

표면적으로는 일본을 향하는 이 대통령의 어깨가 무거워진 듯한 모습이다. 한일 양국은 지난해 10월 다카이치 내각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모토로 관계를 개선하기로 합의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서는 우리 역시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제기할 '기회'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 전직 고위 당국자는 "이 대통령이 임시정부 청사 방문이나 중국의 항일 투쟁 역사 부각 등, 중국에서 소화한 일정을 다카이치 총리에게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다카이치 총리도 면전에서 뭔가 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우리가 보여 준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성의'에 비해 일본 측의 호응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에 한 차례 파행됐던 사도광산 강제 징용 노동자에 대한 추도식이 올해도 일본의 무성의한 태도로 제대로 열리지 않은 것이 그 사례다.

그 때문에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미온적 태도에 대해 언젠가는 '드라이브'를 걸지 않으면 일방적 한일관계에 그칠 것이라는 지적이 최근 들어 자주 나왔다. 이런 측면에서 이 대통령의 방중 직후 이어지는 일본 방문은, 한국에 부담이라기보다는 필요했던 '외교적 메시지'를 전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이다.

다만 한국이 '중국의 대변인'처럼 보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럴 경우 중일 갈등에 한국이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이는 한미일 3국의 밀착을 떨어뜨리고 싶어 하는 중국의 의도에 말려드는 셈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7일 상하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역사적으로 올바른 편에 서고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라는 시 주석의 발언과 관련해 "공자님 말씀으로 들었다. 착하게 잘살자는 의미로 이해했다"라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시 주석의 발언을 '일반론'으로 치환해, 자신이 '중국의 메신저'로서 일본에 가지 않는다는 선명한 입장을 표출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시 주석이)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역사적으로 바른편에 서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건 맞다"라며 "특정 사안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저로서는 특별히 반응할 필요는 없었다"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한미일을 '갈라치려는' 중국의 의도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굳이 공식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없다"라며 "우리는 중국의 전략적 의도를 인지하고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국익에 기반한 실용외교로 대응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