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태가 던진 질문…'규칙 기반 국제질서' 유효한가[한반도 GPS]

美, 무력 동원한 마두로 대통령 체포 정당성 논란 지속
'규칙'보다 '힘' 중시되는 국제질서…세분화한 전략 수립이 필수

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

마약 유통 혐의로 미국에 체포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법정 출석을 위해 뉴욕 맨해튼에 도착하고 있다. 2026.1.5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군사작전을 전개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한 사건은 국제사회에 다시 한번 화두를 던졌습니다. 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기본 전제로 여겨졌던 '규칙 기반 국제질서'는 여전히 유효할까요.

'규칙' 아닌 '힘'에 의한 국제질서 작동 원리 재확인

분명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마약 유통 혐의로 먼저 기소한 뒤, 자국의 특수부대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투입해 마두로 대통령 부부의 신병을 확보했으며, 미국으로 이송해 재판에 넘겼습니다.

미국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이 국제 마약 조직과 연계된 범죄 혐의의 핵심 인물이며, 군사작전은 국제적 범죄 대응과 베네수엘라 국민 보호 차원에서 이뤄진 '정당한 법 집행 작전'이라는 것입니다.

반면 베네수엘라 정부와 몇몇 국가에선 주권국가에 대한 부당한 군사 개입이며,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국제법은 국가 간 무력 사용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습니다. 유엔 헌장은 '다른 나라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침해하는 무력 사용'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제형사재판소(ICC)는 한 국가의 대통령이 저지른 범죄라도 그를 재판에 회부할 일차적 책임을 해당 국가에 부여하고 있습니다. 마두로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사법 당국에 의해 기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에서 재판을 받는 것의 정당성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ICC가 다루는 범죄 중 '침략범죄'는 '한 국가의 정치적 또는 군사적 행동을 실효적으로 통제하거나 지시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가 그 성격·중대성·규모로 보아 유엔 헌장을 명백히 위반하는 침략 행위를 계획·준비·개시·실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엄격하게 적용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했다는 판단도 가능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사태는 강대국이 자의적으로 규칙이나 국제법을 해석해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 현재의 국제질서임을 다시금 확인한 계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규칙은 존재하지만, 그 규칙을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라 '힘'이라는 뜻입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이 그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나 중국의 대만 문제 대응 방식을 비난한 논리와 모순적 태도를 보여 준 것이라는 비판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질서 깨는 또 다른 주체인 '북한'…'이중 기준' 비난하며 대화 거부 예상

국제사회의 질서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깨 온 또 다른 주체 중 하나는 북한입니다. 국제사회는 핵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오랜 기간 핵확산금지조약(NPT)이라는 틀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 조약은 핵무기를 이미 보유한 국가의 핵무기 확산을 막고, 핵무기를 갖지 않은 국가가 새로 무기를 개발하지 않도록 하는 대신,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은 허용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합니다.

북한의 핵 개발 역사는 이 체제에 대한 도전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북한이 국제사회가 자신들에게 '이중 기준' 혹은 '이중 잣대'를 들이댄다고 주장할 때 들이미는 논리가 바로 핵무기 개발과 베네수엘라 사태와 비슷한 '강제 개입'입니다.

베네수엘라 사태를 본 북한은 다시금 자신들의 논리가 맞는다는 주장을 펼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군사력이 열세인 국가가 핵을 보유하지 않을 경우 언제든 '침략'을 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 북한 내부에서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갖은 제재를 받으면서도 고도화에 성공한 북한의 핵 능력에 비춰봤을 때, 이러한 북한의 기조는 오랜 기간 유지돼 온 국제 비확산 체제 전반을 흔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외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선까지 미국을 지지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담론이 형성되면서, 반미 여론이 확산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모든 사안에 대한 외교적 지지를 요구하며 우리를 압박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한국 외교는 동맹과 다자주의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게 된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선택의 단순화'를 추구할 때가 아니라 사안별로 전략적 접근법을 세분화할 때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개입한 외교의 장의 영역에 따라 '힘'의 논리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다변화한 전략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수 있습니다.

국제질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 변화가 한반도에 어떤 선택과 비용을 요구하는지를 냉정하게 살펴볼 시점입니다.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유효한가'라는 질문은 '예, 아니오' 중 하나를 고르는 퀴즈가 아니라, 우리가 그 규칙을 어떤 기준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외교적 화두로 전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