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관심은 온통 일본에…日 가는 李 대통령에 '과제' 던졌다

中 '항일전쟁' 끌어와 "日이 역사 역행…韓 '올바른 입장' 취해야"
"日에 과거사 문제 제기할 공간 넓어져…'中 대변인' 모습은 피해야"

조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진행된 한중 외교장관 통화에서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며 한국에게 '올바른 입장'을 요구했다. 대만 문제를 두고 일본과 날 선 외교전을 벌이는 중국이 곧 중국·일본을 연이어 방문할 이재명 대통령에게 과제를 던진 것이라는 해석이 1일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에 나름의 불만을 표한 것이라는 해석과, 중국이 한국에게 일본과의 갈등 해소에 '역할'을 할 것을 요구했다는 해석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실용외교를 추구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양국 간 갈등 국면을 지렛대 삼아 오히려 외교적 보폭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中, '과거사 문제' 제기하며 日 압박 메시지…韓에 '조정자' 메시지도

조현 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오는 4~5일에 열릴 한중 정상회담 준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전날 통화를 진행했다.

중국 외교부가 낸 보도자료를 보면, 왕이 부장은 올해가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일본의 일부 정치 세력이 역사를 역행해 침략과 식민주의 범죄를 재조명하려는 시도에 맞서 한국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로 올바른 입장을 취하고 국제정의를 수호할 것을 믿는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철저히 지킬 것을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으로 양국 간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나온 이같은 중국의 입장은 한국에게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 편에 설 것을 노골적으로 촉구한 것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이달 중순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한국에 일본과 밀착하지 말 것을 요구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오랫동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고,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에 대해서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 부장의 발언을 새로운 압박으로 볼 순 없다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왕 부장은 아울러 "양국 정상의 전략적 지도 아래 한중관계가 침체기를 벗어나 올바른 궤도로 복귀해 꾸준히 긍정적인 발전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중국은 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환영한다"라고 밝히며 한중 정상회담에 성의 있게 임할 것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 대통령에게 '대만 문제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표한 뒤,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요구하면서 일본에게 일종의 '외교적 압박'을 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 중국 당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매체가 지난달 31일 한국의 '조정자' 역할을 언급한 바 있다. 잔더빈 상하이 대외경제무역대학 한반도연구센터 주임이 환구시보에 기고한 글에서 "한중 양측은 일방주의에 공동으로 반대하고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며 "한국은 중일 갈등 간 갈등 조정자 역할을 원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2/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日에 과거사 문제 제기하는 기회 될 수도…'中 입장 대변'은 피해야"

표면적으로 압박의 형식으로 보이지만, 중국이 한국에게 '기대하는 역할'이 있다는 것은 우리 정부 입장에서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하는 등 한중 경제 협력 확대 문제를 논의해야 하고, 서해구조물 문제 등 까다로운 현안을 제기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외교적 협상력을 키울 요소가 생겼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올해 4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북미 대화, 나아가 남북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상호주의적' 대화를 할 공간이 넓어진 모양새다.

다만 일본에게 어떤 방식으로 중국의 입장을 전달하며 '조정자' 혹은 '중재자' 역할을 할지에 대해서는 면밀한 구상이 필요해 보인다. 마치 한국이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면, 한일관계는 물론 중국과의 밀착을 경계하는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일본의 과거사 문제가 중일관계에서뿐만 아니라 한일관계에서도 중요한 현안인 만큼,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언급하는 선에서 중국 측의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항일전쟁 승리 80주년'을 끌고 들어와 중국의 입장을 강조하고, 이 대통령이 이번 중국 방문에서 항일 운동의 상징인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할 예정이라는 점에서 한중 간 일정 수준의 공감대가 설정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국의 관영매체들도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일본 식민 지배에 맞선 투쟁의 중심 인물"이라고 소개하며 한중 공동의 항일 투쟁 역사를 부각했는데, 이는 그 자체로 일본의 입장에선 부담이 되는 측면이 있다.

다카이치 내각은 이재명 정부와 우호적인 관계를 추구하면서도 유독 과거사 문제에 있어서는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다.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 등재 당시 한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를 위한 추도식을 매년 열겠다고 약속하고서도 추도식 준비 과정에서 '강제 동원' 사실을 선명하게 인정하지 않아 추도식이 2년 연속 파행을 빚었다. 일본은 또 작년 10월에는 우리 항공기가 독도 인근에서 훈련한 점을 문제 삼으며 공군의 '블랙이글스'팀이 아랍에미리트(UAE)로 가는 길에 일본에서 진행하려던 중간 급유를 거부했다.

이재명 정부가 먼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로 한일관계 개선에 물꼬를 텄음에도 일본의 '성의'가 돌아오지 않는 것인데, 이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지적하는 여론의 목소리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정부의 입장에선 곧 열릴 한일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라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일본에 '이제 과거사 문제에 성의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의 압박을 전달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일본과의 '사전 소통'을 통해 일본도 부드럽게 압박을 빠져나갈 전략을 꾸릴 시간을 주는 것이 '실용외교'에 이익이 된다는 지적이다.

황재호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문제를 언급하되, 중국의 불만을 대변하는 듯한 분위기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면서 "한일 역사 문제에 일본도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달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 안에 중국의 입장도 암묵적으로 내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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