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혁신 화두는 '공간력'…공간 개선 23경비여단, 불침번 없앴다
생활·근무·훈련 환경 개선 작업…2036년까지 '공간 혁신' 목표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육군이 '공간력'(空間力)을 전투력 혁신의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각 부대의 생활·근무·훈련 환경을 개선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장병이 생활하는 공간을 단순히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소통과 단결을 촉진하고 임무 몰입을 높이는 전투력의 기반으로 재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29일 육군에 따르면 육군 23경비여단은 병영시설 공간을 전면 재배치해 생활 여건과 경계작전 역량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여단은 한 건물 내에 생활공간(생활관·샤워실), 사무공간(지휘통제실·사무실), 공용공간(체력단련실·휴게실)이 한 층에 뒤섞여 있던 구조를 1층 사무공간, 2층 생활공간, 3층 공용공간으로 분리 조성했다.
이전에는 1중대 1층, 2중대 2층, 3중대 3층 등 층별로 불침번을 운용해야 했지만, 공간 개선 이후엔 2층에 생활공간이 모이면서 2층에만 불침번을 세울 수 있게 됐다. 또한 CCTV를 2층에만 설치하면 되기에 예산도 적게 들어 신속한 설치가 완료됐고, 현재는 CCTV가 불침번을 대체해 불침번 제도 자체가 없어졌다.
군 관계자는 "간부들의 업무여건도 좋아졌다"라며 "같은 층에서 함께 일을 하니 이동 동선이 짧아져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소통이 이뤄져 업무 효율성을 달성했다"라고 말했다.
육군 52사단은 '보여주기식' 개선을 지양하고 사용자 눈높이에서 '오고 싶은 공간'을 만든다는 기준으로 공용 공간을 재구성했다.
체력단련장은 소규모로 분산 운영하던 시설을 과감히 통합·확장하고, 육군 시범사업인 '헬스기구 렌탈 사업'을 활용해 최신 장비를 구비했다. 연병장도 인조잔디와 트랙으로 교체 중인데,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지역 주민들도 활용할 수 있는 민군 통합형 연병장을 만들었다.
육군은 이러한 변화가 장병들의 복무 만족도와 자발적 활동을 끌어올린다고 보고 있다. 스마트폰만 쳐다보던 장병들이 한 공간에서 운동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축구선수로 활동하던 권도형 상병은 최신식 시설에서 다시 운동하며 다시 축구인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육군은 지난 10월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간력 개념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이어 김규하 육군참모총장은 11월 6일 지휘서신 2호를 통해 "공간력 혁신으로 사람 중심의 병영문화를 구현하자"라고 강조했다. 김 총장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진행돼 온 병영문화 개선에 더해 이제는 하드웨어의 핵심인 공간 혁신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육군이 정의하는 공간력은 '공간 개선으로 장병을 모으고 머물게 해 소통, 변화, 단결하게 하는 힘'이다. 단순한 미관 개선이나 리모델링이 아니라, 장병이 생활하는 모든 공간을 새롭게 바꿔 구성원들의 능력과 안정성을 끌어올리고, 결과적으로 전투력과 작전 효율도 높이겠다는 개념이다.
공간력은 김 총장이 취임 전부터 다듬어 온 개혁 키워드다. 그는 총장 지명 직전인 8월 29일 국방일보 기고문에서 창끝부대의 여건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며, 인력 문제와 중견 간부 이탈 우려 속에서 "장병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공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육군은 해외 사례로 영국 킹스데일 고등학교를 들었다. 이 학교는 한때 연간 280여건이 넘는 정학이 발생했고,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도 매우 낮았다. 새로 부임한 교장은 학생 간의 다툼과 괴롭힘이 복도에서의 우발적 현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파악해 복도 중앙에 페인트로 선을 그었고, 이후 학생 간 다툼이 90%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학교가 본격적인 공간 개선에 나섰고, 10여 년 동안 단 한 건의 정학이 발생하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미국 해병대는 'Barracks 2030' 프로젝트 일환으로 병영 공간을 개방적·소통형 구조로 바꾸고 있다"라며 "영국 국방부 또한 '통합학습·훈련 인프라 모델'을 중심으로 군의 교육·학습·생활환경을 하나의 캠퍼스형 체계로 묶는 개념을 추진 중인데, 이는 공간을 설계할 때 정체성과 소속감, 상호작용의 흐름을 함께 고려하는 게 곧 사람을 설계하는 일임을 인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군은 올해 약 40억원을 투입해 7개 부대를 시범적으로 개선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2026년에는 약 200억원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2036년까지 육군 전 부대의 통합·재배치, 부대개편 계획과 연계된 공간혁신 사업을 실행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육군 관계자는 "공간력 개선은 사람 중심의 병영문화를 조성하는 하드웨어 확충이 주목적"이라며 "병영 공간을 어떻게 조성하느냐에 따라 장병들의 복무 몰입도와 태도가 달라지기에 향후에도 상급부대 중심으로 개선을 지속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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