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핵잠 도입 협상 빨라지자, 北 "먼저 띄운다"…남북 경쟁 본격화

北, 8700톤급 핵잠 실물 첫 공개…한미는 내년부터 본격 협의 예정
러시아 지원 받았을 가능성…北 추구하는 '다극세계' 구축 박차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이 8700톤급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며 함체 전체의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5일 김정은 당 총비서가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건조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북한이 25일 건조 중인 8700톤급 핵추진잠수함의 함체 전체의 모습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한미가 지난 10월 말에 핵잠 도입에 합의하고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실무 협의에 착수하기로 하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자, 북한이 자신들의 핵잠 건조 속도가 더 빠르다면서 일종의 맞대응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北, 8700톤급 핵잠 실물 첫 공개…'핵미사일 발사' 전략핵잠(SSBN)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정은 당 총비서가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 건조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하며, 건조 중인 핵잠수함의 함체 전체 사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지난 3월 핵잠 건조 사실을 처음 공개했을 당시에는 함체 일부만 노출했으나 이번에는 외형 전체를 공개하면서 핵잠 건조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음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은 이 잠수함의 배수량이 8700톤급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국의 주력 공격형 핵잠인 버지니아급(7800톤급)보다 크다. 북한은 원자로 추진체계, 통합 무장 여부 등 현재 건조 공정이 어느 단계까지 진척됐는지와 내부 구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통상적인 핵잠 건조 단계로 봤을 때 원자로 압력용기, 증기 발생기, 주터빈계통, 감속기·주축라인, 주냉각펌프 하우징, 미사일 발사관 구조물 등이 잠수함 내부에 들어간 상태로 볼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설비가 내부에 장착된 뒤 잠수함의 외피가 결합된 상태로 보인다는 것이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곧 핵잠을 진수한 뒤, 원자로 연료를 장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냉각, 전기, 진동 등의 소음 시험을 진행한 뒤 연료를 장전해 시운전과 실출력 등의 시험을 거칠 것으로 예상했다.

북한은 이날 공개한 핵잠을 '핵동력전략유도탄잠수함'이라고 지칭하며 '전략 유도탄' 탑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전략 유도탄은 통상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탄도미사일을 의미하는 만큼, 해당 잠수함은 핵미사일 공격 능력을 갖춘 전략핵잠수함(SSBN)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꾸준히 개발해 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이나 순항미사일(SLCM)이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는 재래식 핵잠수함(SSN) 도입을 추진 중이다.

김 총비서는 "우리의 국방정책은 최강의 공격력을 기초로 하는 방어 정책"이라며 해군력의 핵무장화와 현대화를 지속 추진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러면서 새로 개발 중인 '수중 비밀병기'의 연구사업 상황과 새로운 해군 부대 창설 구상도 밝혔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지난 24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미국·캐나다·일본 방문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12.24/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한미, 핵잠 도입에 속도…北은 '러시아 지원'으로 핵잠 성과 과시

북한이 전격적으로 핵잠수함의 실물을 공개한 것은, 최근 한미 간 핵잠 협의에 속도가 붙은 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은 지난 10월 29일 경주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핵잠 도입 문제를 논의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곧바로 '한국의 핵잠 도입'을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지난달 14일 공개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도 한국의 핵잠 도입을 위한 한미 간의 '긴밀한 협력'이 명시됐다.

이어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4일 미국 방문 결과를 설명하며 "핵잠 협력과 관련해 양측 간 별도의 협정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추진하기로 했다"라며 논의에 일부 진전이 있었다고 밝혔다.

위 실장은 그러면서 "대통령실이 중심이 돼 정상 간 합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데 분명한 공감대를 확인했다"며 "내년 초 가능한 이른 시기에 미측 실무 대표단이 방한해 안보 분야 사안을 협의하기로 했다"라고 밝혀 핵잠 도입을 위한 한미의 협의가 본격화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한미 정상이 핵잠 도입에 합의한 뒤 건조에 더 속도를 낸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기술 지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노동신문은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8일에 보낸 '연하장' 전문을 공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쿠르스크주 지역을 강점자들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조선인민군 군인들의 영웅적인 참전과 뒤이어 러시아 땅에서 진행된 조선 공병들의 활동은 러시아 연방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불패의 친선과 전투적 우의를 뚜렷이 확증했다"며 북한의 파병에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어 '지역 및 국제문제들에서의 협동'과 '정의로운 다극세계 질서 수립'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난 18일에 온 푸틴 대통령의 편지가 북한이 처음으로 핵잠의 실물을 공개한 날 뒤늦게 함께 공개된 것에는 함의가 있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한미의 핵잠 합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핵잠을 공개하며 다자 진영 간 대결 구도를 부각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아울러 김 총비서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견제의 성격이 있는 '트럼프급' 대형 전함 건조를 골자로 한 '황금 함대' 구축 계획을 밝히고, 23일엔 미국의 핵잠수함이 부산항에 입항한 뒤 자신들의 핵잠을 공개했다. 북중러 밀착 차원에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실제 핵잠을 실전에 투입하려면 최소 4~5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경우 첫 핵잠 건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현재로선 북한의 속도가 빨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올해 5000톤급 신형 구축함 건조도 '속도전'으로 진행한 북한은, 한미에 대한 억제력 강화를 위해 핵잠 완성의 시간을 당기기 위한 총력전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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