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역' 쏙 뺀 사도광산 이행보고서…한일 약속 뭉갰다

전시·추도식서도 '강제성' 표현 배제…정부 "유산위 권고 충실 이행 안 돼"
정부 "사도광산 후속조치, 일본의 성실한 이행 촉구"

사도광산의 갱도 모습. 2024.11.25/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일본이 지난해 7월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결정 당시 한국 측에 약속한 사안을 여전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외교부와 유네스코 등에 따르면 일본은 최근 '사도광산 이행보고서'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가 결정된 지난해 7월 일본에 '8개 권고사항'에 대한 이행보고서를 올해 12월 1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8개 권고사항 가운데 한국과 관련된 항목은 E항인 '해석·전시 전략 및 시설 개발'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광산 개발 모든 기간에 걸쳐 유산의 전체 역사를 현장에서 포괄적으로 다룰 해석·전시 전략 및 시설을 개발하라"라고 일본 측에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일본이 제출한 이행보고서에는 조선인 강제노역을 알 수 있는 '강제성'이라는 표현과 이를 알리기 위한 노력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는 게 정부의 평가다.

일본은 '한국인 노동자 전시실 개설'과 관련해 에도시대 이후 광산 노동자들에 대한 설명과 전시를 보강했다며 "관련국과 긴밀히 협의했다"라고만 설명했다.

또 사도광산에서 약 2㎞ 떨어진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내에 한국인 노동자 관련 전시실을 설치하고, 일부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고 간략히 소개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보고서에 명시하지 않았다.

사도광산은 니가타현 사도시에 위치한 에도시대 금광으로, 일본은 이를 자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선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2000여 명이 끌려가 강제로 노동했던 현장으로, 한일 간에 해결하지 못한 과거사 문제의 대표적 장소 중 한 곳으로 인식돼 왔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기간(1941~1945년)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해 사도광산을 활용했고, 이 과정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조선인을 대거 동원했다.

당초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진 시기를 제외한 에도시대(1603~1867)로 한정해 신청서를 제출하며 '일본 최대 금광'이라는 역사만을 부각하려 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를 유적 설명과 전시에 반영해야 한다며 유네스코와 일본 측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를 담당하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도 일본의 등재 신청에 대해 '보류'(refer) 권고 조치를 통해 사도광산의 '전체 역사'를 반영할 것을 주문했다.

이후 한일 외교당국 간 협의를 거쳐, 일본은 강제동원 피해를 알리는 전시물 설치와 매년 7~8월에 한일 공동 추도식 개최를 약속했고, 한국은 이를 전제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동의했다.

그러나 일본이 설치한 강제동원 관련 전시물에는 2년째 '강제 동원' 관련 표현이 빠졌고, 한일 공동 추도식 역시 일본이 추도사에 '강제성' 관련 표현을 넣는 것에 반대하며 2년째 정상적으로 열리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이행보고서가 유산위 권고와 일본의 약속을 충실히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앞으로 양자 차원은 물론 유네스코 차원에서도 일본의 성실한 이행을 지속적으로 촉구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외교가에서는 세계유산 등재 취소 등 실질적 제재 수단이 제한적인 만큼, 일본이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날 외교부는 대변인 논평으로 "이번 보고서는 사도광산 등재 당시 전체 역사를 사도광산 현장에 반영하라는 세계유산위 결정과 일본 스스로의 약속을 일본 정부가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지적한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는 세계유산위 결정문과 그 결정문의 일부였던 유네스코에서의 일본 정부 대표 발언을 상기코자 하며, 일본이 유산위 결정, 스스로의 약속, 한일 양국 간 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해 나가기를 촉구한다"면서 "사도광산 유산 등재 후속 조치와 관련하여 앞으로도 일본 정부와 지속 대화해 나가고자 한다"라고 덧붙였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