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바로잡기냐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냐…4·3 논란 또 도마 위에

4·3 진압 관여한 박진경 대령 국가유공자 등록에…대통령이 나서 '취소 검토' 지시
이념 분쟁 '탑다운식 해결' 적절성 여부도 살펴야

지난 2022년 5월 제주시 연동 박진경 대령 추도비에 설치된 '역사의 감옥에 가두다'라는 이름의 감옥 조형물이 강제 철거되고 있다. .2022.5.20/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사건 당시 강경 진압 작전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특정 인사에 대한 상훈을 재검토하라는 지시가 나오면서 이번 사안이 과거사에 대한 올바른 바로잡기가 아니라 이념 갈등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16일 제기된다.

무공훈장 취소해야 유공자 지위 상실…'국가유공자 등록'만 취소는 어려워

박 대령은 1948년 4·3진압 작전에 투입돼 작전 이행 도중 사망했고, 사망 2년 뒤인 1950년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그에 대한 국가유공자 지위 증서는 지난 10월 20일 양손자의 신청 후 국방부의 훈장 서훈 기록 확인, 경찰의 범죄사실 등 결격 사유 조회를 거쳐 약 2주 만에 발급됐다. 제주 현지에 있는 박 대령 추도비가 훼손되는 사례가 종종 나오자, 유족들이 추도비의 국가현충시설 지정을 통한 보호를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국가유공자법 4, 6조에 따르면 무공훈장을 받은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별도 심의 없이 국가유공자 등록 자격이 생기고, 본인 또는 가족이 등록을 신청하면 행정절차만 거치면 된다. 국가유공자 증서엔 발급 당시 대통령과 국가보훈부 장관의 인장이 찍혀서 나온다.

그 때문에 박 대령의 유공자 지위를 취소하려면, 1950년 서훈된 을지무공훈장(무공훈장)을 취소·박탈하는 게 필요하다. 서훈된 무공훈장이 취소되면 국가유공자 지위 역시 자동 박탈되기 때문이다. 이밖에 별도의 사유로 국가유공자 지위만 취소하는 것은 현행법으로는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된다.

훈장 취소가 되려면 수훈자는 △서훈 공적이 거짓이거나 △적대 지역으로 도피했거나 △사형,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 등 특정 범죄 경력 전과가 생겼거나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서훈 취소안이 만들어지면 행정안전부 장관은 서훈추천권자(국방부 장관)의 요청 또는 자체 심의에 따라 이를 국무회의에 제출하고 심의를 거쳐 의결하게 된다. 서훈이 취소되면 무공훈장과 관련한 물건 및 금전에 대한 환수도 함께 이뤄진다.

실제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국무회의에서 전두환, 노태우 등 5·18 민주화 운동 진압으로 무공훈장을 받은 176명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자 이들에 대한 훈장 서훈을 취소한 바 있다.

특별법 개정 등을 통한 서훈 취소도 가능하긴 하지만 4·3사건의 경우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컨대 5·18 민주화 특별법의 경우 민주화운동 진압을 공로로 받은 상훈은 서훈을 취소하도록 하는 규정이 명문화되어 있지만, 지난 2000년에 제정된 4·3사건법(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희생자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골자라 서훈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4·3사건에 근거한 서훈 취소는 아직 이뤄진 바가 없다"라며 "공적으로 무공훈장을 받았더라도 친일, 친독재, 진실화해위 결정 등이 드러나는 경우 사후 훈장 박탈이 가능하도록 하려면 상훈법 등 법 개정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령의 공적 기록 확인이 관건…'대통령 지시' 섣불렀다면 파장 예상

제주 4·3특별법에 근거해 지난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박 대령은 1948년 5월 6일 조선경비대 제9연대장으로 부임, 제11연대장으로 변경 후 그해 6월 18일 부하에 의해 암살될 때까지 한 달여간 제주도에서 진압 작전을 지휘했다. 박 대령은 과도한 강경 진압에 반발한 부하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박 대령을 살해한 부하들이 북한에 동조한 좌익세력이라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고, 박 대령은 사망 2년 뒤인 1950년 무공훈장을 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박 대령은 연대장 취임식 때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선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라고 발언했고, 양민과 폭도의 구분이 어렵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총살하는 등 강경한 진압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반면 유가족과 일부 부하들은 박 대령이 폭도 토벌보단 피신한 주민들의 하산에 작전의 중점을 뒀다고 증언하고 있어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는 말도 나온다.

문제는 박 대령에 대한 무공훈장 서훈 사유가 4·3과 관련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방부 등 군 당국은 현재 훈장 수여의 근거가 된 공적 기록을 파악 중이지만, 75년 전의 일로 기록 자체가 부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이 직접 '잘못된 과거'를 고쳐야한다는 지시를 내렸지만, 만일 박 대령이 4·3사건이 아닌 다른 사안으로 무공훈장을 받았다면 문제가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도 전날 브리핑에서 관련 논란을 의식한 듯 "무공수훈자일 경우 심의 의결을 거치지 않고 자동결정 되는 부분에 대해 다시 한번 사회적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단 의미"라고 대통령의 지시를 부연했다.

하지만 바로잡아야 할 과거라도 이를 바로잡는 방식은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즉각적 조치가 아니라 긴 사회적 논의 및 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맞는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제2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위원회' 등 독립적인 국가 조사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불필요한 이념 논쟁이나 분쟁을 막기 위해 적절하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도 1950년 7~8월 제주 서귀포시 섯알오름 동굴에서 민간인 218명이 집단 총살당한 '제주 예비검속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 및 국가의 공식 사과 등을 권고한 바 있어 관련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는 방안도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관련법 및 진실화해위의 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 가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훈부는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에 대해선 관계기관 협의 및 절차 등을 면밀히 검토해 조치할 것"이라며 "국가유공자 등록 시 이같은 논란의 재발 방지를 위해 법 개정 등을 포함한 개선 방안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