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은 '핵잠·원자력' 언급했는데, 美는 "투자 의지 환영"…입장 다른 한미

한미, 팩트시트 발표 후 첫 고위급 협의…양국 발표에 '입장 차' 감지
큰 틀에서의 논의는 순항…한미, 곧 실무 협의 채널 구축 예정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0.30/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한미가 정상회담의 합의 결과를 담은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이행을 위한 후속 논의에 착수했지만, 주요 협력 사안에 대한 입장 차이가 감지됐다.

한국은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과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에 속도를 내고 싶어 하지만, 미국에선 이 사안에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국은 팩트시트 이행을 위한 실무협의체를 곧 구성하기로 하는 등 큰 틀에서 중대한 '이견'이 발생하진 않은 것이라는 관측이 2일 나온다.

韓 "핵잠 도입·원자력 협정 논의 조속하게"…美는 "대미 투자·조선업 협력" 부각

정부는 이날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크리스토퍼 랜다우 미국 국무부 부장관과 외교차관회담을 갖고, 지난달 14일 공개된 '조인트 팩트시트'의 후속 조치를 집중 논의했다고 밝혔다. 박 차관은 회담에서 민간용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절차 도입을 위한 협상의 조속한 개시를 공식 요청하며, 원자력 협정 개정·조정 관련 실무 논의에 신속히 착수하자는 입장을 전달했다.

박 차관은 또한 팩트시트에 명시된 한국의 핵잠 도입 문제, 조선·전략산업 협력 사안에 대해서도 "양자 간 본격 협의가 가능한 여건을 조성하자"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같은 날 토미 피곳 수석부대변인 명의의 발표문에서 핵잠이나 원자력 협정 관련 언급을 넣지 않았다. 국무부는 "양측이 팩트시트 이행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라는 원론적 문구만을 담았다. 대신 "랜다우 부장관은 조선 분야를 포함한 전략산업 전반에서 한국이 보여준 전례 없는 미국 제조업 투자 의지를 환영했다"라며 한국의 대미 투자 관련 합의를 더 부각했다.

이날 양국은 '합의문' 등의 공동 문건이 아닌 보도자료 형식의 발표문으로 회담 결과를 소개했다. 이는 상호 문안에 대한 합의가 필요 없는 방식으로, 통상적으로 각국의 이익을 더 부각하는 방식으로 작성된다. 그 때문에 이같은 차이를 두고 한미 간 '중대한 이견'이 발생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한국의 핵잠 도입과 원자력 협정 개정·조정 문제는 미국 조야에 널리 퍼진 '핵 비확산'이라는 명제와 연관된 사안이기 때문에 미국 행정부도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인식은 재차 확인됐다는 평가다.

한미는 '공동의 문안'을 작성하는 팩트시트 발표를 앞두고도 2주가 넘는 줄다리기를 한 바 있다. 미국에선 국무부·에너지부·국방부·상무부 등 여러 부처가 관련 논의에 참여하며 문안 조정 과정에서 핵 비확산과 관련해 부처별 상이한 의견이 개진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는 이번 차관회담에서 팩트시트 후속 조치 논의를 위한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하는 등 큰 틀에서 합의 사항을 차질 없이 이행한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한미의 우선순위가 다른 듯한 모습이 확인되면서, 후속 조치를 위한 협상이 각론으로 들어가면 한미 간 논의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박윤주 외교부 제1차관이 지난 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에서 크리스토퍼 랜다우 국무부 부장관과 한미 외교차관회담을 개최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2.2/뉴스1
미 의회 동의·핵 비확산 기조가 변수…"탑다운·바텀업 협상 동시 진행해야"

핵잠 도입의 핵심 쟁점은 핵연료 조달 방식이다. 현재까지 확실한 것은 한국이 핵잠을 도입하는 것에 미국이 찬성했다는 것과, 핵잠이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건조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했듯, 핵잠 운용을 위한 핵연료 공급은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미국은 군사용 핵물질 이전에 극도로 보수적이며, 특히 국무부의 비확산 조직과 에너지부 산하 국가핵안보국(NNSA)이 핵 관련 기술의 해외 이전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기관들로 꼽힌다.

미국은 지난 2021년 9월 대중 견제 강화를 위해 영국·호주와 안보 협력체 오커스(AUKUS)를 결성하고 호주에 핵잠 기술 이전을 약속했지만, 실제 협정이 체결되기까진 3년이 걸렸다. 미국이 호주에 핵 관련 기술을 이전하기 위해 원자력법 91조에 예외조항을 적용하기까지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서 치열한 논의가 전개됐기 때문이다.

원자력 협정의 개정·조정 논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2035년까지 유효한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한국에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의 농축 허용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금지 △농축·재처리 활동에 미국의 사전 승인 필수 등 강력한 제한을 걸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미국의 원자력 협정과 비슷한 '포괄적 사전 동의'(advance consent) 수준의 자율성을 확보하려고 한다. 핵잠 도입과 마찬가지로 미국을 상대로 한 방대한 설득이 필요한 사안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모든 사안의 최종 관문인 미 의회의 승인 절차를 넘어야 한다. 핵연료 수출을 위한 별도의 협정이나 원자력 협정 개정·조정 등은 모두 미 의회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초당적으로 핵 비확산 정책을 중시하는 의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정부의 면밀한 설득 전략이 필요한 대목이다. 특히 내년 11월 미국의 상·하원 선거(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힘'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한국에 유리한 결과를 낼 수 있는 시간표는 일단 1년이 주어졌을 뿐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핵잠이 핵무기를 탑재하지 않는 비핵무기 체계이며 해역 방어용이자 미국의 인도·태평양 정책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한국의 대규모 미국 제조업 투자·조선 분야 협력 확대가 미국의 산업 부활 전략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구상과 직결된다는 점을 적극 부각할 계획이다. 원활한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핵잠과 원자력 협정 문제의 빠른 해결도 촉구해 미국의 수용성을 높인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힘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흐름은 나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미국의 중간선거 변수가 커질 수 있다"라며 "한미 간 협의체가 가동되면 오히려 협의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와의 직접 소통(탑다운)과 실무 간 논의(바텀업)가 동시에 속도감 있게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