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트럼프와 보폭 맞추면서…G20 '다자주의 수호'는 동참, 연속성이 관건
韓, 美 회의적인 다자주의 거듭 '지지'…WTO 기능 회복 강조도
전문가 "韓, '보편적 가치 명확성' 외교적 공간 확보하는 길"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국과 동맹 사안 등에 대해 보폭을 맞추고 있는 이재명 정부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무대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다자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을 거듭 내 주목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첫날인 22일(현지시간) 의장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정상회의 선언문을 깜짝 채택했다. 선언문은 통상 폐막일 채택이 관례였다. 이번 선언문 메시지의 핵심 중 하나는 '다자주의 정신 재확인'이다.
미국은 남아공 정부가 자국 백인 소수에 불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회의를 전면 불참했고, 정상선언 채택에도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럼에도 남아공은 이번에 정상선언을 채택했고 한국도 '찬성표'를 던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요하네스버그 엑스포 센터에서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주제로 열린 G20 정상회의 첫 세션에서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 회복은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라고 밝혔다.
이는 다자주의 자유무역을 상징하는 WTO 체제의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관세 압박' 및 '보호무역주의' 등으로 WTO와 각을 세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와 결이 다른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또한 중견 5개국(한국·멕시코·인도네시아·튀르키예·호주) 협의체인 '믹타(MIKTA)' 정상회의를 주재하며 다자주의 회복을 촉구하는 공동언론발표문을 이끌어냈다.
발표문에서 "믹타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면서 '글로벌 다자주의 강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올해는 이런 믹타의 정체성과 역할을 재확인해야 하는 중대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앞서 한국이 의장국을 맡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다자주의를 둘러싼 '균열'이 뚜렷하게 드러난 바 있다. 지난 1일 발표된 '경주선언'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대 속 그간 APEC 정상선언문의 상징적 표현이었던 'WTO를 핵심으로 하는 규칙 기반 다자무역 체제'라는 문구가 삭제됐다.
미국은 당시에도 '다자무역 체제 지지'와 관련해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결국 관련 문구 빠졌는데 '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 추진'처럼 '자유무역' 문구는 포함됐다. 이는 의장국 한국의 중재 역할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 외교는 비교적 선명한 '좌표'를 보여줬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동맹 사안에선 미국과 보폭을 맞추되, '보편적 가치'에 대해서는 기존 우리가 견지해 오거나 국제사회의 '중론'을 따르는 기조를 분명히 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예컨대 한미 간 핵추진 잠수함 도입, 국방비 증액, 연합방위 체계 강화 등 동맹 현안에서는 정책 조율을 이어가지만, 다자주의·자유무역·국제규범과 같은 가치문제에선 G20·APEC·믹타에서 주도적으로 메시지를 내는 양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탈다자 기조가 G20과 APEC 문안 협상에서 직접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규범과 자유무역 메시지를 최소한의 선에서라도 분명히 하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확보해 주는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우리만의 방향을 명확히 하고 이를 토대로 제3국 또는 소규모 협력체와의 협력을 모색하는 건 직간접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국가 또는 단체들도 일정 부분 '양해'가 되는 그런 효과를 가지게 된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는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이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상황과 시기별로 우리 정부의 큰 컨셉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오히려 정책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 미중 전략 경쟁 심화, 탈(脫)글로벌화 흐름이 지속되는 환경에서 한국의 원칙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올해 유엔총회 제3위원회의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한 점도 주목되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9~2021년, 당시 남북대화 기조 등을 감안해 한국은 공동제안국에서 빠진 바 있다.
당시 이러한 행보를 두고 일관성이 결여된 행보라는 일부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 2022년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연임에 처음으로 실패한 바 있는데, 일부에선 북한인권 문제 '외면'이 원인이라는 주장을 펼쳤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한국이 전략적 자율성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면서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 의제를 분명히 하는 것이 오히려 외교적 공간을 확보하는 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기조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지만, 미국의 다자주의·자유무역 질서에 대한 시각은 언제든 다시 바뀔 수 있다"면서 "미국이 만들었지만 스스로 흔들고 있는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선 현상 유지를 원하는 자유주의 국가들이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yoong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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