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한국형 핵잠 공식화했지만…중대 난관 남았다[한반도 GPS]

핵잠 시대 첫 문 열었지만…美 의회·IAEA·정치 변수 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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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지난달 29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을 총망라한 양국 간 공식 문서에 한국의 핵추진잠수함(핵잠) 도입 사업이 명시됐습니다. 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이어지는 절차 또한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기면서, 한미동맹이 새로운 단계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동안 여러 논의에서만 언급되던 핵잠 보유가 이제는 실제 정책 궤도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미가 지난 14일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는 "미국은 한미 원자력 협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를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또한 "미국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승인했다"며 "미국은 이 조선 사업의 요건들을 진전시키기 위해, 연료 조달 방안을 포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다"라는 문구도 담겼습니다. 한국의 핵연료 주기와 핵잠 도입 추진을 둘 다 인정한 미국의 첫 공식 기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이번 합의는 큰 방향성을 정해둔 수준입니다. 핵잠이 실제로 건조돼 운용되기까지는 여러 기술적·외교적 절차를 차례대로 통과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잘 넘기지 못한다면, 이번 성과가 '가능성 확인'에만 머무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가장 큰 문턱 중 하나는 미국의 원자력법 91조입니다. 핵잠에 쓰이는 원자로 연료는 '군사 목적'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를 제3국에 넘기려면 미국이 별도의 법적 특례를 승인해야 합니다.

이와 별개로 '오커스 협정'으로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핵잠을 도입하기로 한 호주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포괄적 안전조치협정 14조' 관련 협의를 4년째 진행 중인 사례도 주목해야 합니다.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은 핵물질을 무기로 전용하지 않도록 IAEA와 포괄적 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합니다. 14조는 '해군 함정 추진용 핵물질은 예외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한국도 핵잠을 추진하는 이상, 호주와 동일한 절차를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미 원자력협정도 중요한 변수입니다. 이 협정은 기본적으로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설계돼 있어, 20% 미만의 우라늄 저농축만 제한적 절차 안에서 허용하고 있고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는 전면 금지돼 있습니다.

하지만 핵잠 추진용 연료는 군사적 목적이기 때문에, 현 협정의 틀만으로는 기술적·법적 요건을 모두 처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런 이유로 협정의 일부 조정이나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말이 외교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정부 역시 '원자력협정은 민수·평화적 영역'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핵잠 추진과는 별도의 트랙에서 접근하려는 기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의회의 승인도 필수적입니다. 의회는 비확산과 관련된 사안에서 특히 보수적으로 움직입니다. 기술 이전이나 군사 장비 제공 관련 검토는 오랜 시간 논쟁을 거치기 때문에, 의회 단계에서 사업 속도가 늦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정치적 변수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이번 결정을 내린 당사자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점이 특히 그렇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과정에서 돌발적인 방식으로 조건을 바꾸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실제 이행 과정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팩트시트에 '승인'이라는 문구가 들어갔지만, 프로젝트가 진전될수록 정치적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됩니다.

핵잠 건조 장소를 둘러싼 문제도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닙니다. 정부는 "한국에서 건조하는 것을 전제로 협의가 진행됐다"고 설명하지만 팩트시트 문구에는 장소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일부에서는 잠수함의 선체는 한국에서 만들고 원자로 구역이나 최종 조립은 미국에서 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시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일정 지연뿐 아니라 한국이 핵잠 기술을 쌓는 과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민감한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핵잠 프로젝트는 이제 공식 의제화 단계를 넘어서 다음 단계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행은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법적 절차, 국제기구 협의, 정치적 변수 등이 한꺼번에 얽혀 있는 만큼, 한국이 '핵잠 시대'에 돌입하기 위해선 꽤 긴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번갈아 지나야 할 가능성이 큽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