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팩트시트 발표되더라도…원잠 확보까진 '허들' 산적

원잠 확보, '팩트시트' 막판 진통…美 의회 등 추가 변수 남아
정부, '평화적 이용' 강조…美 국익과의 '연결고리' 보완 관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29일 한미정상회담 장소인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백악관 공식 사진, 다니엘 토록 촬영, 재판매 및 DB금지) ⓒ News1 류정민 특파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 한미 관세·안보 분야 협상의 결과가 담긴 공동 설명자료인 '조인트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한국의 원자력추진잠수함(원잠) 도입을 두고 핵무기 관리·감독 및 비확산 체제 유지에 관여하는 미 주요 부처 간 이견 조율에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추후 발표될 팩트시트에 '한국의 원잠 건조'가 명시되더라도, 핵연료 도입과 농축 및 재처리 권한 등을 확보하려면 미 의회 등 유관기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한국의 원잠 확보가 조선업 등 미국 산업 부흥에 기여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공동 방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어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의 일관된 전략 수립 확보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잠 확보, '팩트시트' 막판 진통…美 의회 등 추가 변수 남아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9일 KBS '일요 진단 라이브'에서 "(팩트 시트는) 지난주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원잠 건조 문제가 대두됐다"라며 "이와 관련해 미국 내 각 부처 조율이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국의 원잠 도입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건의에 대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호응'하며 급물살을 탔다. 한미는 애초에 안보분야에 대해선 합의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러다 이번에 원잠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며 일부 문안 수정이 필요해지며 팩트시트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선 '핵 비확산' 기조가 팽배한 가운데 관련 정책을 주도하는 에너지부가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략무기 수출 통제를 담당하는 국무부와 민감기술의 이전 및 통제와 관련된 상무부와의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원잠 도입 관련 내용이 팩트시트에 명시되더라도, '한미는 한국의 원잠 도입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표현이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뼈대로 한미 실무당국 간 후속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데, 원잠 건조 장소와 기술 이전을 비롯해 핵연료 공급 등 각론으로 들어가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관련 절차를 마치더라도 미 의회의 승인이라는 '최종 관문'도 남아 있다. 특히 미국이 자체 기술로 만든 핵연료를 수출하려면 '원자력법'에 따라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한 원자력 협정의 개정이나 핵추진잠수함 관련 신규 협정 체결을 위해서도 미 의회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현재 정부는 한국에서 원잠을 건조하되 미국에선 핵연료만 제공받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인태 지역 주요 동맹국으로서의 안보 기여도, 핵확산 가능성에 대한 미 의회의 우려를 불식해야 할 후속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해군 예비역 중령)은 "미국이 직면한 함정 건조 능력의 한계와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구상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는 방식을 검토해야 한다"라며 "에너지부와 그 산하 국가핵안보국(NNSA)엔 핵연료 관리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동관리 모델을 제안하고, 미 의회엔 한미협력 확대를 통한 고용 창출 등 실익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30일 경주화백컨벤션센터 인근 국제미디어센터(IMC)에서 APEC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10.30/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정부 '평화적 이용' 강조하지만…美 국익과의 '연결고리' 보완 관건

정부는 한국의 원잠 도입이 평화적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기 위해 공식 용어도 '핵추진잠수함'에서 '원자력추진잠수함'으로 바꾸고, 원잠이 '공격용'이 아닌 '방어용'이라는 측면을 지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원잠이 서해 등 우리 해역 방어 활동을 위한 목적임을 명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최근 "농축과 재처리를 포함한 '민간' 원자력 협력 협정으로 개정할 계획"이라며, 통상 '원자력의 민간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의 협력을 위한 협정'이라는 정식 명칭 대신 '한미 원자력 협정'으로 부르던 것에서 '민간'을 굳이 언급하며 비군사적 목적을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의 원잠 확보가 미국의 안보 부담을 줄여주는 카드라는 부분도 지속해서 언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에 한국 원잠 확보가 부합하는 측면이 있고, 이는 해당 권역에서의 미국의 안보 부담을 경과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논리를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원잠 사업단이었던 362사업단장을 지낸 문근식 한양대 특임교수(예비역 해군 대령)는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지침 개정 때도 상무부 등 유관 부처의 반대가 심했지만, 레이건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강력하게 추진하면서 성사될 수 있었다"라며 "한국은 핵무기를 만들 의지가 없고, 북한의 핵기술 고도화는 역내 안보에 공동 위협이 된다는 점을 계속해서 설득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번 원잠 도입 사안이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에 따라 속도를 낸 사안인 만큼, 정권 교체 전 후속 협의에서 '안전장치'를 조속히 마련해 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원잠 한국 도입에 대해 어쨌든 미국이 일차적으로 동의 또는 승인한 것이다. 미국 조야에 비확산 기조가 강하다는 걸 고려한다면 그 자체가 큰 허들을 하나 넘은 것"이라며 "다만 이젠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원잠 관련 가시적인 시작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만약 다음에 민주당 정부가 들어오면 지금과 다른 흐름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