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 사안' 피해간 한중…대중 '관리 외교', 협력으로 시작

[경주 APEC]'한한령' 논의, 풀어보자 공감대…70조원 통화스와프 체결도
李, 北 문제 '中 건설적 역할' 적극 요청했지만…習 적극 호응은 '글쎄'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일 경북 경주시 화백컨벤션센터(HICO)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2세션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11.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경주=뉴스1) 노민호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일 첫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민감한 사안은 피하고 '관리 외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며 한중관계 개선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오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97분간 이어진 회담에서 서로를 자극하기보단 '안정적 관계 관리'와 '경제·민생'에 일단 초점을 맞췄다. 이는 양 정상 간 첫 회담이라는 점, 그리고 전 정부 때 부각됐던 한중관계 '악화' 여파가 아직 이어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특히 시 주석 방한 직전 전격 이뤄진 미국의 '한국 핵추진 잠수함 보유' 승인을 비롯해 '서해 구조물' 설치와 같은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 한국의 '반중 시위' 등 각종 변수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에 앞서 이 대통령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한중관계와 관련해 "외형적으로는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거나 회복돼 있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현재 한중 간 경제 협력 구조가 수직적인 분업 구조에서 수평적인 협력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양국 간의 호혜적인 협력 관계도 시대의 흐름에 맞춰 더 발전해 나가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양국은 이사 갈 수 없는 중요한 가까운 이웃이자 떼려야 뗄 수 없는 협력 동반자"라며 "수교 33년 이래 양국이 사회 제도와 이데올로기적인 차이를 뛰어넘어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 추진함으로써 서로의 성공을 도와주면서 공동 번영을 이뤘다"라고 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한중관계의 실질적 성과'를 말하고, 시 주석은 '한중관계의 건강한 안정적 발전 추진이 양국 국민들의 근본적 이익에 부합한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한중관계.ⓒ News1 윤주희 디자이너
'한한령' 논의, 소통해서 풀어보자 공감대…70조원 통화스와프 체결도

양 정상은 이날 '한한령'(한류 금지령)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정상회담 관련 결과 브리핑에서 "좋은 논의가 있었다"며 "서로 신뢰와 협의를 해보자(고 했고) 소통해서 풀어보자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양 정상은 '한중 양해각서 및 계약 교환식'도 별도로 열고 총 6건의 양해각서와 양국 중앙은행간 통화스와프 계약서를 체결했다.

구체적으로 양국 중앙은행 간 맺은 '원/위안 통화스와프 계약서'는 5년 만기 70조원 규모로 양국 금융·외환시장의 안정과 교역증진에 대한 기여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또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협상의 실질적 진전을 통한 양국 간 경제 협력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서비스 무역 교류 협력 강화 MOU'를 비롯해, '실버경제 분야 협력 MOU', '혁신 창업 파트너십 프로그램 공동추진 MOU', '2026∼2030 경제협력 공동계획 MOU', '한국산 감 생과실의 중국 수출 식물검역요건 MOU', '보이스피싱·온라인 사기 범죄 대응 공조 MOU' 등을 체결했다.

MOU 면면에서 드러나듯 이번 회담의 키워드는 '경제협력'과 '민생'이었다. 양국이 정치·안보 현안보다는 실질 협력으로 관계 복원의 물꼬를 튼 만큼, 향후 '관리 외교'의 지속성과 성과가 한중관계의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2세션에서 악수하는 모습이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HICO) 인근 국제미디어센터(IMC)에 생중계되고 있다. 2025.11.1/뉴스1 ⓒ News1 김민지 기자
李, 北 문제 '中 건설적 역할' 적극 요청했지만…習 적극 호응은 '글쎄'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해선 양국 간 '명확한 공조' 사인이 감지됐다기보단, 중국은 한반도 사안을 언급할 때 밝혀온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며, 북중관계를 의식한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한중 양국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라고 했다. 또한 "최근 중국과 북한의 고위급 교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라며 "이는 대북 관여 조건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위 실장은 "(정상회담에서) 양측 모두 미북 대화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런 분위기 조성에 함께하자는 정도 이야기를 했다"라며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나 안전에 대한 언급을 했으나 구체적으로 대화를 재개한다는 데 어떤 역할까지 한다고 얘기한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참고로 중국 외교부는 이날 한중 정상의 모두발언 관련 보도자료에서 이 대통령의 북미 대화 발언은 거론하지 않았다.

아울러 위 실장은 "이 대통령이 우리 정부의 비핵화 및 평화 실현 구상을 소개하고,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을 당부한 데 대해 시 주석도 '한반도 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화답했다"라고 전했다.

'한반도 평화·안정 노력'은 중국이 그간 견지해 온 입장으로 새로운 건 아니다. 특히 시 주석이 '북한 비핵화'를 직접 언급했는지도 현재로선 불분명하다.

위 실장은 중국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해 온 '쌍중단(북한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과 쌍궤병행(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동시진행) 입장을 견지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인 방안을 얘기한 것은 없었다"라며 "그동안에 북한 핵 문제 상황이 많이 변했다는 얘기는 있었다"라고 답했다.

위 실장은 '중국이 북한 비핵화보다는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해 왔는데 같은 입장을 유지했는지'에 대해선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를 쓰는 건 다 아는 사실"이라며 오랫동안 그렇게 해 왔다. 그러나 그 뜻은 다 비핵화다. 북한도 비핵화, 남쪽도 핵을 갖지 않는 그걸 뜻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는 두 가지 용어 자체에 대한 위 실장의 답변으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은 지난 9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중국 '전승절' 기념행사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열린 북중 정상회담 결과를 전하면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2018년과 2019년 북중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거론됐던 것과 다른 행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해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