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술지원·조선소·원자력 협정 개정·…핵잠 건조, 이제부터 '디테일 싸움'
트럼프 '정치적 승인'으로 큰 틀 확정…세부 협의는 이제 본격화
- 허고운 기자, 김예원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김예원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라고 밝히며 우리 군의 30년 숙원사업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러나 실제 건조와 전력화까지는 미국의 기술 지원 수준, 조선소 역량 보강, 한미가 각각 담당할 건조 범위 확정을 위한 논의 등 실무적이고 복잡한 과제가 남아 있다. 곧 맞이할 '악마의 디테일'을 잘 넘기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제언이 31일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한국의 핵추진잠수함이 미국 필라델피아 조선소(한화필리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고 밝힌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의 종합 국정감사에서는 한국형 핵추진잠수함 건조 계획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다.
국감장에 출석한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강동길 해군참모총장의 발언을 종합하면 △첫 함 완성까지 약 10년 소요 △배수량은 5000톤 이상 △연료는 20% 이하 저농축 우라늄 △최소 4척 이상 건조 등으로 정부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구상이 윤곽을 드러냈다.
그러나 안 장관은 "지금은 ABC(초기) 단계"라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여러 가지 운용 능력, 또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 어느 기업에서 할 것인지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 새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 사업은 △한미 원자력 협정 조정(개정)을 비롯한 핵 연료 조달 방식 △핵잠수함 건조지로 거론된 미국 필리조선소의 설비·인력 확충 △미국의 기술 지원 범위 등 '디테일'을 잘 조정·확정하는 것이 사업의 속도와 내용의 질을 가를 핵심 변수로 거론되지만, 이와 관련된 움직임은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다.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이 지금부터 10여년 후인 2030년대 중반 실전에 배치되기 위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퍼즐은 핵 연료다. 현행 한미 원자력 협정은 군사적 목적의 농축·재처리를 금하고 있어 잠수함용 핵 연료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협정의 조정 또는 예외 적용 추가, 아니면 새로운 협정 체결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승인' 발언으로 '정치적 명분'은 마련됐으나, 실제 협정 개정 혹은 신규 체결을 위해서는 미 행정부와의 협상, 미 의회의 심사와 승인 등 법적·행정적 절차가 남아 있다. 정부는 우선 핵 연료 공급 방안과 핵 연료의 무단 전용을 막기 위한 감시 체계를 구체화하는 방안을 한미 정부 간 실무 채널에서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원자력 협정의 개정이나 핵추진잠수함 관련 신규 협정 체결을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동의가 필수다. 그 때문에 워싱턴을 상대로 한 '여론전' 등 정부 차원의 외교적 접근도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야당과 사이가 좋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는 협정 개정이나 신규 협정 체결 대신 행정명령으로 한국의 핵추진잠수함 건조사업을 예외적으로 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건조지로 필리조선소를 콕 집어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도 더 논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핵추진잠수함을 독자 건조하고 핵 연료를 미국에서 받기를 원했던 것으로 파악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업을 '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생각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이 미국에 대규모로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필리조선소는 상선 중심 인프라가 대부분이어서 잠수함 전용 도크나 은닉형 건조동, 방사선 안전 설비 등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위한 신규 투자가 필요하다. 아울러 잠수함 건조를 위한 숙련 노동자와 기술자 수급도 만만치 않은 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규백 장관도 "(조선소 문제와 관련해선) 한미 간 추가적인 논의를 반드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필리조선소에서 핵추진잠수함 엔진체계의 핵심인 소형원자로를 제외한 나머지 선체 구조물을 만들고, 소형원자로와 관련된 작업은 '가장 안전한 군 시설'에서 수행한다는 구상을 수립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기술 지원 범위도 핵추진잠수함 사업 성패의 핵심 요인이다. 미국이 그간 핵잠수함을 운용하면서 쌓은 핵심 기술이나 관련 노하우를 전수한다면, 한국형 핵추진잠수함의 완성도를 높이고 전력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은 영국·호주와의 협력에서도 핵심기술을 직접 이전하진 않았다. 미국이 한국을 돕는다면 설계·규격 자문, 시험평가 참가 등 '절충형 지원'에 무게가 실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은 자체 건조를 원칙으로 하되 한미 협력을 강화하는 최적의 패키지를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10년 이상 걸릴 수 있는 사업을 '누가 총괄하느냐'도 중요한 문제다. 핵추진잠수함 건조 자체는 물론 원자력 관련 규제, 외교를 한 데 묶어 사업을 효율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건조 후엔 교육·정비·연료 교체 및 폐기 등 핵잠수함의 '모든 주기'를 관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군 당국은 핵잠수함 건조를 준비하기 위해 사업단을 구성해 조선소 등에 대한 실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아직 범정부 차원의 조직 구성은 논의가 구체화하지 않았다.
전날 국정감사에서도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총리실 직속 국책사업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고, 안 장관도 "유관 부서와 유기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서 손색이 없도록 준비하겠다"라고 답했다. 유용원 국민의힘 의원은 한미조선협의체·핵추진잠수함국책사업단을 구성해야 한다고 건의하기도 했다.
예산과 인력의 현실적인 배분도 숙제다. 정부가 처음으로 진행하는 사업인 만큼, 설비 투자와 안전체계, 운용·정비 비용까지 더하면 사업비는 통상적인 추정치보다 늘어날 수 있다. 핵잠수함 도입에 따른 주변국의 반대도 걸림돌로 지목되지만,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고, 중국의 첫 반응도 "핵 비확산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수준으로 예상보다 온건하게 나와, 외교적 리스크는 오히려 크지 않다는 평가다.
정부 관계자는 "한미 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는 출발 신호였고, 좋은 잠수함을 만들기 위해선 디테일을 잘 챙겨야 할 때"라며 "정부와 군, 업체가 한미 협상과 국내 준비를 충실히 한다면 2030년대 중반 우리도 핵잠수함 보유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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