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질환 위장한 병역 기피자 늘지만…검증·적발 시스템 현저히 부족

[국감브리핑] 불안·우울 등 경미한 정신질환 위장해 진단서 발급…5년간 118건
'허위' 증거 잡아낼 장비·인력 턱없이 부족…수사 범위 확대 등 모색해야

경기 수원시 팔달구 경인지방병무청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공동취재) 2025.1.13/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김예원 기자

A 씨는 "식당에 갈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다", "아픈 것을 부모에게 보여주기 싫어 친가 방문도 힘들다"며 의사에게 증상을 과장·위장해 우울장애 진단서를 발급받아 병무청에 제출, 4급 판정을 받았다. A 씨의 거짓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여행 사진을 게시하는 등 팔로워들과 정상적인 소통을 하는 모습을 수상히 여긴 수사 당국에 적발됐다.
B 씨는 병역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 어머니와 공모, 진료 의사에게 우울감과 충동성, 자살 등 증상을 과장·위장해 불안장애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B 씨는 병무청에서 4급 판정을 받았지만, 그가 피부과 관리, 농구 활동 등 정상적인 일상을 보내며 SNS에 '6개월간 2주에 한 번 병원 가면 공익 받음' 게시글 등을 올리자 그에 대한 제보를 접수한 병무청이 수사에 나서면서 범행이 탄로 났다.

최근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위장하며 병역 면탈을 시도하다 적발된 인원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갈수록 심화하는 정신질환 위장 병역 기피를 방지하기 위해 병무청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인력 및 장비 지원을 늘리고 수사 범위를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20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실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8월까지 최근 5년간 정신질환을 가장한 병역 면탈이 적발돼 송치된 건수는 총 118건이다. 연도별로 △2021년 29건 △2022년 24건 △2023년 16건 △2024년 27건 △2025년(8월까지) 22건으로,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규모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체 118건 중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58건은 국민신문고 등 제보를 통해 적발된 것으로 드러났다. 특사경이 적발한 '인지' 사건은 41건, SNS 자료 분석 등 '기획' 사건은 19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특사경에 적발된 정신질환 병역 면탈 사례를 보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축구 모임 참석, 리조트 방문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장애, 우울 장애 등 상대적으로 경미한 정신질환을 위장 및 과장한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정신질환 위장 방법 및 신체검사 판정 기준을 검색해 의료진을 속이기도 했다.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병역판정검사에서 보충역 또는 면제 판정을 받는 사례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병무청에 따르면 우울장애로 4~7급 판정을 받은 인원은 지난해 2411명으로, 2023년(2050명) 대비 17.6%가량 늘었다. 불안 및 강박 장애 등으로 4~7급 판정을 받은 인원은 지난해 1003명으로, 2023년(860명) 대비 14.2%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신질환 병역 면탈은 의료 장비로 진단이 어려운 개개인의 심리에 대해 병역 면제의 고의성을 입증해야 해 수사 난도가 높은 범죄로 꼽힌다. 병무청 특사경의 수사 권한을 확대하고 SNS 활동 등 파악이 가능한 디지털 포렌식 장비 지원 등을 늘려 적극적으로 병역 면탈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병무청 특사경은 현재 디지털 포렌식 장비 2대로 증거 확보를 시도하고 있지만, 장비 수가 적고 노후화해 대용량 분석 시도 시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등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법 91조 등엔 병역 의무를 연기 및 면제시키거나 복무 기간을 단축할 목적으로 거짓 서류 및 진단서 등을 발급한 공무원 및 의사들에 대한 처벌 규정이 있는 만큼, 특사경의 수사 범위도 병역 면탈 인원에서 거짓 진단서 등을 발급한 공무원과 의료기관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대식 의원은 "병역 의무 이행은 공정과 신뢰의 문제"라며 "정신질환 위장 등 교묘해지는 병역 면탈 수법에 대응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수사권과 장비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kimye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