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외교 허점 노출한 정부…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캄보디아 사태
'원팀' 대응 못해 사태 커져…대사 공백·역량 부족으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연루 취업사기 및 납치·감금 사태가 악화한 것은 정부가 관련 사안에 면밀하게 총괄적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관련 사안의 심각성이 심화했음에도,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주캄보디아대사관 등에 대한 인력 보강 및 특별팀 구성 등 관련 사안에 대한 '총력 대응'의 시점이 상당히 늦었다는 비판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나 한국인이 자발적으로 관여한 범죄 피해가 심각해진 건 2023년 말부터다. 범죄를 주도하는 중국 등의 조직이 이때부터 '골든트라이앵글'(라오스·미얀마·태국 접경지대)에서 캄보디아로 근거지를 옮겨가기 시작하면서다.
외교부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납치·감금 피해 신고 사례는 지난 2023년 21건에서 2024년 221건으로 1년 사이 10배나 늘어났다. 올해 8월까지는 330건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신고에 근거한 수치로 실제 피해는 더 클 가능성이 있다.
외교부 차원에선 이 문제의 심각성을 나름대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작년과 올해 주캄보디아대사관의 경찰 주재관을 늘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윤석열 정부 때 행정안전부의 불승인으로 무산됐다. 이달 초에는 캄보디아 외교 당국과 16년 만에 영사협의회를 개최하고 취업사기·감금 피해 예방 등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 주재관 증가 요청 사례에서 보듯, 외교부와 경찰청, 국정원 등 관련 부처 차원의 '원팀' 대응엔 분명한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인원이 십수 명 수준인 주캄보디아대사관에서 이 사안을 어떤 수준까지 파악하고 있었으며 정부 내에서 제대로 공유가 됐는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결과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거나, 알고도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후속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캄보디아 사태에 대한 정부의 '총력 대응' 기조는 지난 8월 캄보디아에서 범죄 단체에 의해 감금됐다 고문을 받고 사망한 대학생 사건이 최근 뒤늦게 알려진 뒤에야 수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의 허점도 노출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비록 비상계엄의 후폭풍을 회복할 필요성이 있었다지만, 미국·중국·일본 등 강국 중심의 외교에 집중하는 사이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 막게 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또 새 정부 출범 이후 재외공관장에 대한 재신임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공관장 공백의 여파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최근에서야 주요 4강국(미국·중국·일본·러시아) 대사 인선을 마쳤다. 소위 '강국'이 아닌 나라들의 주재 대사 임명은 더 지연될 수밖에 없다.
현재 주캄보디아대사 자리는 지난 7월 박정욱 대사의 이임 이후 공석인 상황이다. 정부는 전날 캄보디아로 파견한 합동대응팀(외교부·경찰청·법무부·국가정보원 등으로 구성) 외에 박일 전 주레바논대사를 팀장으로 하는 '캄보디아 취업사기·감금 피해 대응 TF'를 공식 발족했다. 박 전 대사는 신임 주캄보디아대사의 부임 전까지 캄보디아에 체류할 예정인데, 공관장 공백으로 인해 불필요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이라는 시선도 있다.
전직 외교부 당국자는 뉴스1에 "현지에서 한국인 대상 범죄가 폭증하면 주재 대사가 외교 전문으로 본부에 보고하는 게 정상"이라며 "이미 1년 전부터 심각성이 포착된 사안인데 최근에서야 집중 조명되는 건 이상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캄보디아와 같이 치안이 열악하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국가에선 경찰 대응이 미온적인 경우가 많다"라며 "우리의 협조 요청에 대해 당시에는 인지하고 있지만 결국 흐지부지 끝나는 경우가 많다. 지속적인 확인이 현지에서 필요하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캄보디아 사태를 계기로 동남아시아 등 공관의 역량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곳에 대해 업무 현황 점검 등 실태 조사를 진행할 필요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울러 다른 나라에서 우리 국민이 대규모로 연루된 사안에 대한 전수조사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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