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현대화는 위협 아닌 기회…한국이 '능동적 플레이어' 돼야"
[국방의 미래]③ 유지훈 KIDA 연구위원 인터뷰
"美 안보 전략 지원하면 관세·통상 협상도 유리해진다"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올해 1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동맹 현대화'가 관세 협상과 함께 한미의 주요 현안으로 꼽히고 있다. 동맹과 외교안보 정책을 거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이 한반도 안보 지형을 크게 뒤흔들 수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국방비 대폭 인상을 요구하면서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에 직접 활용하는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다. 정부는 국방비 인상에는 뜻을 같이하고 있으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조기에 환수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는 것 외에 미국의 국방정책 조율에 관여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해군 중령 출신인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미국이 한국에도 더 많은 동맹으로서의 요구를 해올 것이라고 전망하며, 한국이 동맹 현대화를 위해 주도적이고 실질적인 기여를 해야 할 때라고 평가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뉴스1과 만난 유 연구위원은 한국 정부와 군은 미국의 요구를 위기가 아닌 '대비태세를 질적으로 발전시킬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안보 전략을 지원하면서 동시에 관세·통상 협상에서 보다 유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내다봤다.
다음은 유 연구위원과의 일문일답.
-앞으로 미국의 국방정책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전망하는가.
▶인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군사적 부상과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이 심화하면서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확실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이다. 전통적인 군사력뿐만 아니라 동맹과 파트너국들과의 연합훈련, 기술 공유, 방산 협력 같은 네트워크 강화를 핵심 축으로 삼을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재정적 제약과 국내 정치적 환경으로 '동맹의 역할 분담'을 더욱 강조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국방비 부담, 첨단 전력 확보 노력, 공동연구개발과 유지·보수·정비(MRO) 협력 확대 등 실질적인 기여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 미국이 전략적 리더십을 유지하되 동맹국들이 그 기반을 함께 떠받치기를 원하는 구도가 될 것이다.
-올해 들어 외교안보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동맹의 현대화'이다. 이 말의 진의는 무엇일까.
▶언론에서는 주로 확장억제 강화,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새로운 무기체계 도입, 연합훈련 확대와 같은 군사적이고 가시적인 변화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이 구상하는 동맹 현대화의 의미는 보다 포괄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 있다. 동맹 현대화는 '미국이 무엇을 더 제공하느냐'가 아니라 '동맹국이 어떤 기여를 통해 함께 억지와 방위를 책임지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동맹 현대화를 단순히 안보 보장의 강화로만 인식하기보다는 '한국이 어떤 분야에서 주도적이고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산업, 기술, 인적 역량을 종합적으로 동맹의 틀에 연계시킬 때 우리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동시에 자율성과 발언권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동맹 현대화와 연계해 주한미군이 감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주한미군의 전면 철수나 급격한 감축이 이뤄질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한다. 한반도는 여전히 미중 전략 경쟁의 최전선에 있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지정학적·전략적 가치는 여전히 크다. 미국 입장에서 주한미군은 단순히 한반도 방어 차원을 넘어 동북아 전체 억지 구조의 핵심 자산이자, 일본·괌 등과 연계된 전력 배치의 중요한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건부 조정'이나 '부분적 감축'은 논의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미국 내부의 재정 압박, 동맹국에 대한 역할 분담 요구 강화, 그리고 특정 행정부의 정책적 기조에 따라 주한미군의 병력 구조나 주둔 방식이 변화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예를 들어 일부 병력이나 장비의 순환 배치를 확대하거나, 후방 지원 인력을 줄이고 한국에 그 역할을 이양하는 방식이 가능하다.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주한미군의 상징적 규모는 유지하되, 실제 전력 운용에서는 첨단 무기·전략자산의 순환 전개 비중은 점차 늘리는 것이다. 상시 주둔 병력은 다소 줄어들 수 있지만 B-52 폭격기, 전략잠수함, 항모전단 같은 전략자산의 수시 전개를 통해 억지력 자체는 유지된다는 논리를 사용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숫자의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동맹의 억지력과 방위 공약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유지·강화되느냐의 문제다. 한국은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지나치게 불안 요소로만 보기보다는, 미국의 전략 변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분담하고, 어떻게 연합 억지 구조를 보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더 현실적이다.
-한국 정부와 군이 미국의 전략 변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더 분담할 수 있을까.
▲연합 억지력 강화와 첨단 영역에서의 협력 확대가 필요하다. 미국은 전통적인 지상군 전력에 머무르지 않고 미사일 방어, 우주·사이버, 무인체계와 같은 새로운 영역에서의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동시에 산업·기술 차원의 기여도 요구되고 있다. 미국은 국방비와 병력 운용에 제약을 안고 있기 때문에 방산·MRO 분야에서 동맹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또한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국을 단순히 한반도 방어의 동맹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일본·호주·유럽 등 우방과 연결되는 '동맹 네트워크의 허브'로 활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결국 미국이 한국에 원하는 것은 '더 많은 방위비 부담'과 같은 단순한 요구를 넘어 종합적 역할 확대다. 정부와 군은 이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인식하고, 동맹 현대화의 핵심 파트너로서 입지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동맹 현대화 과정에서 한반도 대비태세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미동맹은 병력 숫자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미군의 전략자산 전개, 미사일 방어 협력, 연합훈련, 그리고 한국군의 첨단 전력 강화와 같은 다층적 구조 위에 서 있다. 오히려 한미동맹 현대화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대비태세를 더 정교하고 실질적인 억지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전제 조건은 한국이 동맹 속에서 더 많은 역할을 감당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안보 협상은 관세·통상 부문과도 연관이 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안보와 경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보고 있으며, 동맹국에게도 '안보 기여'뿐 아니라 '경제적 연계'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방위비 분담 협상과 통상 협상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되고, 방산 협력이 자유무역·관세 협상과 맞물려 논의되는 사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흐름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K-방산 수출 확대, MRO 협력, 한미 공동 기술 개발을 미국의 공급망 전략과 결부시킨다면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은 마스가(MASGA)와 같은 전략을 통해 우리의 조선·방산 역량을 미국 산업 회복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안보 기여를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하는 연계 전략을 구사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때 한국은 단순히 방위비 분담을 늘리는 수동적 위치에 머무는 게 아니라, 동맹의 현대화와 산업 협력을 동시에 주도하는 능동적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은 해외 주둔 장성들을 본국에 소집해 지휘관 회의를 열었다. 이 사안의 함의는 무엇일까.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해외 주둔 장군을 갑작스럽게 소환한 방식은 미국의 안보정책이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는 향후 주한미군 운용이나 연합작전 구조 변화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아울러 미군 지휘부의 재편이나 새로운 지침이 한반도 작전체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한국군은 주한미군과의 연합훈련, 지휘체계, 위기 대응 절차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올해로 건군 77주년이 됐으나, 국군이 해결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히 많다.
▲우선 첨단 전력과 신기술 기반의 군사력 강화가 필요하다. 무인체계, 인공지능(AI), 우주·사이버 능력은 미래 전장에서 전통적인 전력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동맹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또한 인적 역량과 조직 문화 혁신도 필수적이다. 장병들의 전문성, 창의성, 그리고 강인한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장병들이 자부심을 갖고 복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민주적 리더십과 투명한 지휘 문화가 자리 잡아야 강한 군대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산업·동맹·다자 협력의 확장도 중요한 과제다. 한국군은 한반도 방어만이 아니라 인도·태평양과 글로벌 안보에 기여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방산·MRO 역량을 동맹 차원에서 활용하고, 유엔 평화유지활동이나 다자 해양안보 협력 등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인구절벽으로 인해 군 구조의 개혁도 필수적인 과제가 됐다.
▲단순히 병사 숫자를 늘려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대비태세를 보장하기 어렵다. 앞으로는 소수 정예 병력과 첨단 무인체계를 결합한 '스마트 군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인기, 드론봇, AI 기반 감시·정찰, 사이버·우주 능력 등을 확충해 인력 부족을 보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장기 복무 간부를 확충하고, 부사관과 장교의 전문성을 강화해 작전의 지속성과 전투력 수준을 높여야 한다.
또한 한국군이 모든 안보 부담을 홀로 감당하는 게 아니라,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일본, 호주, 유럽 등 우방과의 연합훈련·협력을 확대해 병력 부족을 국제적 네트워크로 보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전략적 발상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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