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3단계 접근, 북한 '핵보유국 인정' 딜레마 안고 있다"

[新 북핵 위기]③ 김정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 인터뷰
"E·N·D 이니셔티브, 평화 구상으로 의미 있지만 기대치 낮춰야 현실적"

김정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5.9.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말 취임 후 첫 유엔총회 연설에서 'E·N·D 이니셔티브(Exchange·Normalization·Denuclearization, 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를 한반도·대북 정책으로 공식화했다.

그러나 'D'(비핵화) 단계의 방법론인 '비핵화 3단계 접근(중단→축소→폐기)'이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공식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E·N·D 이니셔티브의 실현 여부에도 의구심은 지속되고 있다.

김정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29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이재명 정부의 제안은 한반도 대화 재개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이해되지만, 북한의 협상 참여 가능성과 실행 여건을 고려하면 불확실성이 높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END는 평화를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기대치를 낮추지 않으면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현 정부의 접근은 과거 보수 정부의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방식보다 유연하지만, 북한이 핵을 '체제 안전 보장 수단'으로 고착화한 상황에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정부의 3단계 비핵화 접근은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일정 부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라고 진단했다.

김정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5.9.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최근 정부가 제시한 E·N·D 이니셔티브의 현실성을 어떻게 보나.

▶북한이 대화에 전혀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의 입장에서는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진보 정부의 DNA를 가진 이재명 정부가 평화를 대화로 구현한다는 기조를 이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다. 다만 각론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았고, E·N·D의 '동시 병행 추진'이라는 구상도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육지책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작다.

현재 남북 간 소통은 1991년 이전 수준으로 퇴행했다. 교류나 협력보다는 우발적 군사적 충돌 방지와 당국 간 연락 채널 복원이 우선돼야 한다. 정부의 큰 구상 자체는 이해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준은 제한적이다. 대화의 '초급 단계'를 다시 여는 것이 급선무이며, 기대치를 낮추지 않으면 정책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중단→축소→폐기' 3단계 비핵화 접근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중단'은 과거 제네바 합의의 '동결'과 달리 검증 개념이 모호하다. 현시점에서는 북한이 새로운 핵물질이나 투발 수단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데, 이는 결국 현재의 핵 능력을 잠정적으로 인정하는 의미가 된다.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용인하는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

과거 한미가 주창했던 '완전하고·검증 가능하며·불가역적 비핵화'(CVID)와 비교한다면, CVID는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전제로 하고 검증·불가역성을 매우 엄격하게 설정한다. 반면 이재명 정부의 단계론은 북한의 단계별 조치에 상응하는 보상을 고려하는 구조다. 북한 입장에선 훨씬 매력적이지만, 하노이 회담 이후 '비핵화는 의제에 올리지 않겠다'고 못 박은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 한국의 경제 협력 카드도 제재로 묶여 있어 레버리지가 거의 없다.

김정 북한대학교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5.9.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결국 지금의 현실에선 핵 군축 협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려면 '비핵화'보다는 '핵 군축' 또는 '군비 통제' 프레임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출발점이 되며, 당장 국제사회의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또 북한과 미국의 주도로 군축 협상이 진행될 경우, 한국의 발언권이 약화할 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다.

-이재명 대통령의 '북한의 핵무기 수출 가능성' 발언은 정세 대응에 효과적이었나.

▶대통령의 의도는 중단 단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한반도가 위험하다는 인상을 줘 득보다 실이 컸다고 본다. 핵무기 수량만으로 그 무기가 방어적 성격이냐, 공격적 성격이냐를 구분하긴 어렵고, 국가 정상의 발언이기 때문에 국제사회나 투자자들에게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줄 수 있다.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용어 선택과 메시지의 핵심 의도를 신중히 다듬을 필요가 있다.

-이른 시일 내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공식적으로 미국은 여전히 '비핵화가 최종 목표'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외교 스타일을 고려하면 변수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협상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적 돌파구를 북미관계에서 찾을 수도 있다. 김정은과의 '서프라이즈 정상회담'이 언제든 열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고 있다. 한국은 중·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러시아는 이미 '북한의 핵 개발을 이해한다'는 표현을 쓰며 사실상 인정하는 입장이다. 중국도 전승절 외교에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자제했다. 이런 환경에서는 한국이 외교적 해빙을 시도하더라도 북핵 문제에 두 나라의 실질적 협력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부가 대화와 평화적 방법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시도를 계속하는 건 국제사회에서 도덕적 신뢰를 높이는 자산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만 지나친 기대를 걸면 실망도 커진다. 지금은 큰 구상보다는 남북 간 최소한의 소통 채널 복원이 중요하며, 긴 호흡으로 인내심 있게 접근해야 한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