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다 피한 북한…남·북·미 유엔총회 '외교 격돌' 없었다

'한미 정상 대면·트럼프의 北 메시지·북미 실무 접촉' 부각 안 된 유엔총회

이재명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기조연설을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지난 23일 시작한 제80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에선 북한을 비롯해 한반도 관련 사안이 예상보다 불거지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북, 북미, 남북미 간 접촉이 선명하게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대적인 '외교전'도 전개되지 않는 모양새다.

유엔총회 개막에 앞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20~21일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비핵화를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미국과의 정상회담 등 대화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는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7년 전 비핵화 협상을 "좋은 추억"이라고 언급하면서 북미 접촉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김 총비서의 연설에 화답하는 메시지를 낼 가능성도 제기됐다. 동시에 미국과 북한의 주유엔대표부 간 '뉴욕 채널'이 가동돼, 유엔총회를 계기로 양측의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57분여간 진행한 긴 연설에서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등 미국이 관여한 모든 국제 현안을 언급하면서 유독 한반도·북한 관련 사안에 대한 입장이나 구상은 밝히지 않은 것이다.

그 때문에 북미 간 접촉이 아예 불발됐거나, 접촉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 네 차례 유엔총회 연설을 했었는데, 한 번을 제외하고 북한을 계속 언급해 왔었다.

이와 관련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아는 범위 내에서 말씀드리면 북미 간 이렇다 할 논의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며 "서로 간 구체적 움직임이 있는 걸로 파악한 건 없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80차 유엔총회 연설. 2025.09.23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지예 객원기자

북한은 김선경 외무성 부상(차관급)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7년 만에 평양에서 파견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김 부상 일행은 아직 뉴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오는 29일 기조연설 순서에 맞춰 뉴욕에 도착하면서 한미와의 접촉 가능성을 낮추려는 의도로 해석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남북 접촉의 계기도 마련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를 중심으로 포괄적 대화를 추진한다는 'E.N.D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의 새 시대라는 한반도 비전을 제시했지만, 북한 측은 이 대통령의 연설에 맞춰 의도적으로 회의장을 이탈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대통령은 △상대 체제 존중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 △일체의 적대 행위 중단이라는 '대북 3원칙'을 제시하기도 했다.

불협화음이 커진 관세 후속협상 등의 '타결'과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의 '대북 제스처' 논의 등이 기대됐던 한미 정상의 대면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기조연설 후 트럼프 대통령이 주재한 정상 환영 만찬 행사에 불참했다. 해당 행사엔 145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이 대통령은 미국 싱크탱크 지도부 및 언론인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 만찬을 주재하며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오는 29일(현지시간) 기조연설에서도 기본적으로 한미를 향해 비핵화 포기 등의 강경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김선경 부상이 '평양의 메시지'를 들고 와 미국과의 물밑 접촉을 추진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의 뉴욕 입성이 늦어지는 이유가 오히려 쏠리는 시선을 피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한 '공개 외교전'은 펼쳐지지 않더라도, 이번 총회가 향후 북미 대화의 주요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