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 달라진 트럼프 태도…'행정명령'으로 비자 문제 실마리 찾나

"뛰어난 인재 합법적으로 데려올 수 있게 하겠다"…비자 발급 기준 '완화' 시사
전문가 "비자 쿼터 확대·절차 간소화 등 제도 개선 필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ICE(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이 공개한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단속 모습. (ICE 홈페이지. 재판매 및 DB금지) 2025.9.6/뉴스1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미국이 비자 문제로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비자 문제 해결'이 한미 간 현안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5일(현지시간) 단속 사태 직후와 달리 7일(현지시간)엔 돌연 비자 문제 완화를 시사하는 언급을 내놓으면서 한국에 대한 '유화 조치'가 전격 발표될 가능성도 9일 제기된다.

트럼프 "전문 인력 데려와 美 국민 훈련하게 해야"…비자 발급 기준 완화?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 이 나라에 배터리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없다면, 일부 사람들이 들어와서 우리 국민이 배터리 제조든, 컴퓨터 제조든, 조선이든 복잡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훈련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일을 아는 사람들을 데려와 잠시 미국에 머물며 돕게 하는 것"이라며 "전문가들을 데려와 우리 국민이 훈련을 받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전체 상황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이민당국이 조지아주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300여 명을 체포한 직후엔 "내 생각에는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이같은 발언은 한미 간 실무 소통을 통해 미국이 구금된 한국인 전원을 '자진 출국' 형식으로 풀어주기로 합의한 뒤 나온 것이다. 한미 간 이번 사태 '출구'를 찾기 위한 협의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미국 비자 체계상 현지에서 급여를 받으며 일하기 위해선 전문직 취업 비자인 H-1B 또는 주재원 비자인 L-1 등을 취득해야 한다. 이번 단속 대상이 된 한국인들이 미국 내에서 취업이 불가능한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 B-1 비자를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미국은 매년 8만 5000개의 H-1B 비자를 추첨제로 발급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재원 비자 역시 발급에 시간이 소요되고 미국에 투자한 회사에서 최근 3년 중 1년 이상을 근무하고 특수자격 등 직무에 대한 경력 및 자격을 인증해야 해 발급 대상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안처럼 일정 기한 내에 대규모 인력이 필요한 경우 적절하지 않은 비자인 셈이다.

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ESTA나 B-1 비자에 의존해 단기 출장 형태로 인력을 파견하는 관행을 이어왔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 기조로 인해 관행이 깨지게 됐다. 상당 기간 우리 기업들의 미국 내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미 간 협의가 빠르게 진행되고,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 발언이 나옴에 따라 미국이 '전향적' 조치를 내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US오픈 테니스대회 남자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뒤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 기지로 돌아와 취재진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조지아주 현대자동차 배터리 공장에서 미국 이민당국이 한국인 노동자 300명을 체포해간 사건과 관련해 "우리는 한국과 훌륭한 관계에 있다"고 답했다. 2025.9.7 ⓒ AFP=뉴스1 ⓒ News1 강민경 기자
"'美 제조업 부활 기여' 어필해 행정명령 끌어내야"…비자 문제 '근본 해결'도 병행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첨단 제조업 육성' 정책과 한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가 맞물린 상황과, 미국에 대한 한국의 대규모 투자가 합의된 상황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유도한다면 단기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를 비자 제도의 개선 기회로 삼아야 한다"면서도 "미국 의회를 통한 입법은 당장은 현실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이번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일본과 유럽 기업들도 마주하게 된 문제"라며 "공장 건설 기간에 한시적으로 비자 면제나 특별 비자 발급을 허용하는 방식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한국, 일본, 유럽이 공조해 트럼프 행정부에 투자 연계형 비자 완화 정책에 대한 행정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제언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외교적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는 필요한 숙련 인력 규모와 분야를 명확히 설정하고, 조현 외교부 장관의 미국 방문 등을 활용해 비자 문제를 최우선 협상 의제로 다뤄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기업이 미국 내 공장 건설과 세금 납부를 통해 미국의 제조업 부활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라며 "한국의 숙련된 인력이 미국에 많이 가면 2~3년 뒤엔 미국인들의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 결국 미국인들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점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홍석훈 국립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면서도 제도적으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모순이 드러났다"며 "H-1B 쿼터 확대와 단기 비자 신속 발급 같은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