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당겼지만 中과는 평행선…성과와 과제 명확한 '실용외교' 100일

[李대통령 100일] 한일 미래에 힘 싣고 대미 관세 협상·첫 정상회담 '선방'
갑작스런 북중 밀착은 '새 과제'…유엔총회·APEC 등 실용외교 시험대 연속

이재명 대통령./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김예원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 100일 동안의 성과는 한국의 핵심 동맹국인 미국·일본과의 관계를 큰 틀에서 '좋은 트랙'에 올려놨다는 것이다.

다만 관세·통상 협상에 이어 또 하나의 산인 미국과의 안보 협상은 이제 시작됐고,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도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또 북한과 중국이 다시 밀착하면서 이달 말 이 대통령의 연설을 앞둔 제80차 유엔총회와 우리가 의장국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과의 거리를 좁히고,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외교를 해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日 우려 불식하며 한일 미래에 힘 싣기…관세 악재도 일단 '선방'

이 대통령의 실용외교 첫발은 일본과 뗐다. 과거사 문제를 앞세우지 않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내세워 일본의 호응을 끌어냈다. 일본 내에선 이 대통령이 반일 감정을 부각해 한일관계를 악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지금은 '기우'로 여기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달 23~24일 이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한국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찾은 첫 사례로, 당시 이시바 총리가 참의원 선거 참패로 '사퇴 압박'에 놓인 상황에서 외교 성과를 내세워 점수를 만회할 수 있게 한 조치기도 했다.

다만 일본은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도 작년에 이어 파행시켰다. 정부가 요구한 '조선인 징용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문구를 추도사에 반영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다. 선제적으로 한일관계 개선 조치를 취한 한국에 일본이 아직 성의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미 외교의 출발은 불안했다. '동맹의 기여'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변수로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고, 백악관이 이 대통령의 취임 축하 메시지에서 난데없이 '중국의 영향력을 우려한다'는 언급을 내놓으며 한미관계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쏟아졌다.

하지만 한미의 관세·통상 협상이 파열음 없이 마무리되고, 한미 정상회담도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우려를 불식할 수 있었다. 이 대통령이 미국을 찾기 전 일본을 먼저 찾아 한미일 협력을 부각한 것에 대한 미국 조야의 평가도 좋았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의 '피스메이커'(peacemaker)가 돼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외교적 수사도 적중하며 정부의 대북 기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얻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이 실시한 조지아주 내 현대자동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단속과 300명이 넘는 한국인 구금 사건으로 잦아드는 듯했던 '트럼프 변수'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전임 행정부에 비해 한국을 중요하지 않은 외교 상대로 보고 있으며, 앞으로 한미 간 소통이 각종 돌발변수에 '치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5일(현시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 도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美 '안보 청구서'도 살아 있는 뇌관…韓 안보 지형 전면 변화 가능성

여기에 '한미동맹의 현대화'를 기조로 곧 본격화될 미국의 안보 청구서도 문제다. 미국은 국방비(국방 예산) 증액과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전략적 유연성)를 청구서의 주요 내용으로 제시할 예정이지만, 아직 한미 간 구체적인 협상은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는 국방비 인상은 수용할 수 있으나,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는 미국의 안을 무조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도 지난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미국이 사용하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용어를 바로 수용하기는 어렵다며 '미래형 전략화'라는 용어를 사용해 한미 간 이견이 있음을 드러냈다.

한미는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8% 선으로 인상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인상의 총 기간 등 세부사항의 접점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다. 국방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5∼2029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약 10년 뒤엔 국방비를 GDP 대비 3.5% 정도로 맞출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측에서 빠른 인상을 요구하게 된다면 협상이 어려워질 수 있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문제도 갈 길이 험난하다. 대만 문제를 비롯해 인도·태평양 권역에서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자 트럼프 행정부는 주한·주일미군 등 역내 병력을 괌 등에 재배치하거나, 주한미군의 역할을 북한의 위협 방어에서 확대해 역내 다른 사안에 투입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는 한국이 독자적인 대북 억지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뜻으로, 한국의 안보 지형 자체를 바꿔야 하는 과제가 될 수도 있다.

한미동맹의 현대화, 즉 안보 협상은 이달 중으로 열릴 것으로 보이는 한미 국방통합협의체(KIDD), 10~11월 중 개최 계획인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등을 통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지난 3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망루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왼쪽부터)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소원했던 북한 당긴 중국…유엔총회·APEC에서 또 시험대 오를 실용외교

한중관계 개선 역시 실용외교의 막중한 과제다. 정부는 당초 10월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성사해 한중관계를 다진다는 구상이었다.

그런데 중국은 최근 전승절(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행사에서 최근 2~3년간 소원했던 북한과의 관계를 다시 '혈맹'으로 복원하는 외교 행보를 보였다.

시 주석은 전승절 행사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를 초청해 지난 4일 정상회담을 열었다. 그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정상 중 유일하게 김 총비서와 단독 만찬을 열며 극진하게 대우를 해줬다.

또 중국과 북한은 앞으로 유엔 등 다자외교 무대에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겠다고 밝히면서 양국의 목표로 '비핵화'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 정상이 모두 이달 말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앞둔 가운데 이뤄진 북중의 오랜만의 밀착은, 고스란히 한미의 새 외교 과제가 됐다.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지속하는 중국은 한미관계 균열을 위해 한중관계 개선을 카드로 한국이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다루지 않거나, 북한이 주장하는 '남북 두 국가' 체제를 일부 수용하라는 강도 높은 요구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APEC이 정부의 구상대로 흘러가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용외교의 성과를 위한 방정식이 한층 복잡해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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