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기회는 사람을 기다려 준다

(서울=뉴스1) 서재준 외교안보부장 = 아무 일도 없는 날에도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처럼 지낸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데 무슨 일이 난 것처럼 기사를 써선 안 된다.
글자 몇 개가 다르면 모든 뜻과 결과가 달라지는 일. 기자의 일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다. 전문가와 기자들은 제각기 모은 정보를 통해 정세를 분석한다. 가령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어떤 논의가 이뤄질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있어야 전망이나 분석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정보는 가변성이 크다. 예를 들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생성하던 정보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생성하는 정보는 내용과 생성 과정은 물론 그 의도조차 판이하다. 같은 사안에 대한 정보도 내용과 톤이 다를 경우가 많다.
수년 전 한창 남북의 대화가 활발할 때 일부 한국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의 입에선 종종 "미국은 북한을 모른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요지는 미국이 아무리 힘이 세고 정보력이 좋아도, 북한과 '한민족'인 우리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북한의 김정은은 선대의 유훈인 통일사업을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에 반론을 제기하면 '다른 편'으로 치부되거나 역사에 무지한 사람 정도 취급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들이 틀린 이유는, 정보가 없었거나 의도적으로 정보를 틀고 꺾었기 때문이다. 정보는 없지만 정치적 의도가 담긴 정세 분석과 전망을, 말하는 이의 권위나 경험 또는 강력한 희망으로 대충 버무리려 한 결과 오류가 발생한 것이다. 긴말을 정리하자면 '희망 회로'를 잘못 돌렸다는 뜻이다.
물론 정보라고 해서 항상 '팩트'는 아니다. 다만 사람의 말과 글로 전해지는 이야기엔 늘 출처가 있다. 정보는 폭포처럼 내리치니까 물웅덩이에서 양껏 골라 마시면 될 듯하지만, 그 폭포를 거꾸로 올라가 수원에 도달하지 않으면 내가 마시는 것이 독인지 정수(淨水)인지 알 길이 없다.
막힌 듯했던 북한 관련 정세에 변화의 순간이 다가온다. 정보가 많지 않은데 벌써 먼 앞날을 점치는 광화문과 여의도의 호사가들도 동굴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정보가 많아지면 거슬러야 할 폭포도 많아지니 취재하는 기자들은 고통스러운 일이 잦을 듯하다. 기사 한 건 쓰는 데 걸리는 시간과 들여야 할 노력도 더 커질 것이다.
그래도 '써야 할 것'은 한 번은 기자를 기다려 준다. 우리는 '적시'와 적기'를 놓칠까 봐 조급해질 때가 많지만, 적시와 적기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한 번은 바라봐 준다. 급하게 군다고 잘 잡히지도 않고, 좀 느리다고 그저 날아가 버리지도 않는다. 무작정 희망 회로부터 돌릴 이유가 없다.
외교와 안보, 협상과 대화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놓친 것을 되돌릴 길은 없지만 기회는 앞에 있다는 점에서다. 폭포를 거슬러 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적시와 적기는 찰나일지라도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줄 것이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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