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다자회의 참석하는 김정은…한국, 北 접촉 '절호의 기회'

北 최고지도자 이례적 다자무대 참석…韓 대표단 늘려 접촉면 넓힐 듯
직접 소통보다 中 통한 간접 소통으로 한중관계 '실익'도 챙겨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News1 DB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중국에서 열리는 '전승절'(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행사에 전격 참석하기로 결정하면서 이재명 정부의 첫 대북 접촉의 장이 베이징에서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고위 당국자들을 총동원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 대표단의 규모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28일 중국 외교부와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총비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초청에 따라 내달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다. 구체적인 중국 방문 일정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다자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김일성 주석 때 이후 처음이다. '최고지도자의 권위' 문제로 다자회의 참석을 꺼릴 것으로 보였던 김 총비서가 예상을 깨고 새로운 외교에 나선 것은 국제 정세에 적극 개입하는 방식이 더 이득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전쟁 참전에 따라 러시아라는 '우군'을 얻고, 이번 행사가 전통적인 우방국인 중국에서 열린다는 점도 김 총비서의 자신감을 키운 요인으로 보인다.

북한이 다자회의에 나오는 것은 기본적으로 참가국과의 소통에 열려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장기 경색으로 여전히 이재명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으나, 정부의 입장에선 공식적인, 공개적인 자리에서 북한의 최고위급과 접촉을 모색할 수 있는 기회임은 분명하다.

최고지도자의 정상 외교인 만큼 북한은 대부분의 고위 당국자들을 총동원해 전승절 행사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주목해야 하는 인물들은 현재 남북관계를 담당하는 외무성의 수장인 최선희와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을 위한 카운터파트인 노광철 국방상, 김정은 총비서의 동생으로 대외 사안을 총괄하는 김여정 당 부부장과 김 총비서의 '비서실장'이라는 평가를 받는 조용원 당 비서 등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정부는 우원식 국회의장 필두로 한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급과 격의 문제, 냉각된 남북관계의 상황으로 인해 우 의장과 김 총비서의 직접 접촉은 어려워 보인다.

대신 우 의장을 통해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남북관계 및 외교를 담당하는 장관급 인사의 파견을 통해 북한 측에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방안이 모색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대북전단 통제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민간 접촉의 전면 승인 등 대북 유화적 조치를 취해 왔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냉담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민간 차원에서도 아직 대북 접촉이 성사된 것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 때문에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전승절 행사 참석을 위해 중국 측에 '한국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북한은 한국과 동선이 겹치지 않게 해달라고 미리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중국 입장에선 관리 차원에서라도 북한의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다만 최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0월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한해 김 총비서와의 만남을 추진하는 데 관심을 보이자 북한도 반발 없이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이번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공식적인 접촉에 응하진 않더라도, 한미의 동향 파악을 위해 정보 당국 간의 비공식 접촉에는 응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 과정에서 남북이 직접 접촉하기보단, 중국을 통한 간접 접촉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한국이 한중관계 관리 차원에서라도 먼저 중국을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나온다.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 미국과 중국을 자연스럽게 개입시켜 북한의 입장에서도 안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화의 틀을 짜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차원에서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