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역할 변화'에 한미 엇박자…李 대통령 "'유연화' 동의 어렵다"
美, 예상보다 고강도 청구서 제안한 것으로 추정…타결 난항 예상
- 정윤영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유연화 요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리 입장에서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밝혔다. 한미가 '동맹의 현대화'로 규정된 안보 협상에서 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동맹 현대화'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가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봤을 땐 시작부터 양측이 기 싸움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동맹의 현대화를 대중 견제 강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주한미군이 중국과 관련된 사안에도 개입할 수 있도록 하고, 한국의 국방비 인상을 통해 한국이 이전보다 주도적으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도록 한다는 게 골자다.
국방비의 경우 현재 GDP의 2.6% 수준인 예산을 3.8~5% 수준으로 올리는 것이 미국의 요구로 보인다. 최소 30조 원 이상의 증액이 필요한 것으로 상당한 압박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됐다. 여기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이나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의 개편 등도 '안보 비용 증가 요인'이 될 것으로 지목됐다.
그런데 아 대통령의 발언으로 봤을 때, 막상 협상이 시작되니 비용 문제보다 주한미군 문제가 더 심각한 사안이 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미래형 전략화'는 필요하다"며 미국이 구사한 '전략적 유연성'과 다른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분명한 의도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당장의 유연성'을 부각한 듯한 미국의 용어와, '미래'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 대통령의 언급에는 뉘앙스의 차이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주한미군의 활동 범위를 두고 한미의 이견이 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방어에 국한되지 않고 인태 지역 전역에서 주한미군을 파견·운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대만, 남중국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전력 투입이 가능해지지만, 한국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이 중국 사안에 투입될 경우 중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큰 부담이 된다. 대북 억제 능력과 한반도 안보의 공백 우려도 문제다.
이날 이 대통령이 언급한 '미래형 전략화'는 주한미군의 물리적 이동보다는 전력의 첨단화와 효율화를 강조해 물리적 이동이 없어도 전력의 영향력을 확대하자는 방향성이 담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가 미국에 사드 기지 배치 등과 같이 중국의 신경을 자극할 순 있어도, 물리적 개입으로 여겨지지 않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제안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동맹 현대화'를 명목으로 주한미군의 역할 확대와 대중 견제 동참을 요구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한중 경제 협력 △한미 안보 공조 △인태 전략이라는 세 축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복잡한 외교 과제를 안게 됐다. 특히 미국이 추구하는 궁극적 이익이 한국의 이익과 크게 충돌할 경우 안보 협상도 장기전이 된 가능성이 높다.
만일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대중 견제 동참을 요구하고, 대만 해협에서의 유사시 개입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일 경우 정부의 입장은 한층 더 난처해질 전망이다.
관세 협상의 후속 조치도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인데, 안보 분야에서 한미의 간극이 크다면 미국이 관세 및 통상 문제를 다시 건드리며 한국을 밀어붙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인태 전략에서 한국의 역할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통한 중국 견제 참여를 압박하고 있지만 한국은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는 "한국이 끝내 동의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 역할 축소나 규모 감축도 검토할 수 있는 만큼, 미국이 요구하는 범위와 역할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을 직접 자극하는 표현은 외교적으로 부담이 큰 만큼 공개 발언은 신중히 하고, 비공개 지침을 통해 조율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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