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오부치 선언 계승' 내놨지만…이시바 '과거사 호응'은 과제로

17년 만에 공동 발표문 문서화…'사죄' 등 日 전향적 조치는 없어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현지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AFP=뉴스1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호응'이라는 과제를 남겼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23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이후, 합의된 내용을 '공동언론발표문'으로 공개했다. 양국 정상이 회담 결과를 문서 형식으로 발표한 건 지난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방일 이후 이번이 17년 만이다.

이시바 총리는 발표문에서 "1998년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 10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채택한 선언이다. 일본 측은 이 선언을 통해 과거 한국을 식민 지배한 데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표했다. 일본의 사죄를 문서화함으로써 이후 한일관계 발전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간 한일 정상회담 이후, 합의된 문서 형식의 발표가 뜸했던 건 회담 전 실무협의 과정에서 '과거사 사안'과 관련해 양측의 합의점 도출이 어려웠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준비 시간이 부족해 당초 공동언론발표문 채택은 상정해 두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별도 지시가 있었고, 이에 일본 측과 다시 협의해서 문서 형식의 합의 내용을 발표하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3일 오후(현지시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일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이시바, 韓 역사 깊은 관심"이라지만…결국 '과거사 호응'은 과제

다만 이번에 과거사 관련 일본 측의 전향적 조치가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 지난해 9월 기시다 후미오 당시 일본 총리도 한국을 찾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비롯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일본이 말하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에는 지난 2015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 담겨 있는 "미래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라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는 일본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앞세워 언급하더라도, 결국 직접적인 '사죄' 발언의 유무가 중요한 이유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24일 도쿄 현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일 정상회담에서 과거사 현안이 다뤄진 것과 관련해 "과거 문제, 구체 현안에 대한 논의였다기보다는 과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는 것이 좋을까 또 과거 문제를 어떻게 다룸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협력을 수용할 수 있을까 하는 다소 철학적 인식 또 기본적 접근에 대한 논의였다"라고 설명했다.

위 실장은 이어 "그 과정에서 이시바 총리가 한국의 문화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존경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라고 부연했다.

이시바 총리는 한일 국교정상화 기념 리셉션에 직접 참석하며 '성의'를 보였지만, 이 대통령의 '전향적 조치'에 비해 걸맞은 호응이 부족하다는 지적에선 자유롭지 못하다.

23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을 시청하고 있다. 2025.8.23/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전문가 "日 상황 감안하면…이시바 역사 인식 계승 표현 현실적 최대치"

이 대통령은 이시바 총리가 참의원 선거 참패에 따른 '퇴진 압박'에 놓은 상황에서도 이번에 일본을 찾았고, 최근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선 '과거 한일 정부 간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뜻도 피력했다.

이 대통령은 동시에 "사과는 상대의 다친 마음이 치유될 때까지 진심으로 하는 게 옳다"라며 이시바 총리의 성의 있는 태도를 촉구하기도 했는데 이는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시바 총리가 한일관계 사안에 있어 다소 건설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유임' 등 내부적인 사안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향적 호응엔 한계가 분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이시바 총리의 국내적인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번에 문서로 역대 내각 인식에 대한 부분이 포함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라며 "그러나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언급하는 것이 현재 일본 내 상황에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 센터장은 "다만 이 대통령이 정책의 연속성을 먼저 얘기한 상황에서 일본도 이제부턴 한국에 대한 정책의 연속성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