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주한 외교관 '면책특권'에 눈살…잡을 방법 없다

'폭행' 온두라스·'음주 뺑소니' 튀르키예 외교관들, 면책특권 '남용'
기피인물 지정 가능하지만…사법 처리는 한계 명확

외교부 전경. 2024.10.25/뉴스1 ⓒ News1 허경 기자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한국에 주재하는 외국 외교관이 각종 범죄 혐의를 받고도 외교관에게 적용되는 '면책특권'을 내세워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외교적 항의 △수사 협조 요청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 지정 등 조치를 취할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처벌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7일 제기된다.

앞서 주한 온두라스대사관의 외교관 A 씨는 지난 6월 부산에서 한국인 남성을 강제추행하고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출장차 부산을 방문한 그는 만취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전해졌다. 온두라스 측은 A 씨의 면책특권을 포기하고 조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A 씨는 지난달 중순 사임 의사를 밝히고 출국해 버렸다. 사법당국은 A 씨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3일 주한 튀르키예대사관 소속 외교관 B 씨는 서울역 인근에서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뒤 달아났다. 그는 자신을 추격한 택시 기사를 폭행한 데 이어 경찰의 음주 측정 요구도 두 차례 거부했다. 외교부는 대사관 측에 관련 수사에 협조할 것을 요구했으나, B 씨는 자신의 면책특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관의 면책특권은 신분상의 안정과 직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전 세계에서 통용되고 있다. 이는 비엔나 협약에 따른 것으로, 협약 제31조에 따르면 외교관은 접수국의 형사 사법권으로부터 면제되며 이에 따라 수사·기소·재판 모두가 제한된다. 온두라스와 튀르키예 관련 사건도 당사자와 해당 국가의 협조가 없이는 사법 처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는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온두라스와 튀르키예의 사례와 같이 외교관의 '죄질'이 나쁠 경우 적어도 수사만이라도 받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주한 외교관도 국내법 준수 의무가 있기 때문에 공안기관에서 수사 요청이 오면 공식 공문을 통해 수사 협조를 촉구한다"며 "사안이 중대한 경우에는 대사관 측을 초치해 강하게 항의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면책특권은 개인의 특권이 아니라 파견국이 부여한 권한이며, 본국으로 소환돼 징계를 받는 경우도 있다"며 "명백한 증거가 있을 경우 상당국에서도 자체적으로 처벌하는 것이 외교 관례"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온두라스 외교관 A 씨는 사건 이후 본국으로 소환돼 파면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처럼 간접적인 방식으로라도 책임을 묻는 효과적인 실효적 수단을 계속 모색 중이라도 전했다.

외교 당국이 면책특권과 무관하게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조치는 해당 외교관을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로 지정해 추방하는 것이다. 이 역시 비엔나 협약에 따른 것이며 기피인물로 지정된 외교관은 72시간 내 출국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기피인물 지정은 양국이 외교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하는 수준의 큰 갈등이 있을 때만 주로 적용해 온 것이 관례다.

지난 1998년에는 러시아가 한국 외교관의 군사기밀 수집 시도를 문제 삼아 추방했고, 한국 역시 보복 조치로 주한 러시아 외교관을 맞추방한 바 있다. 이 사건은 한국 외교부 장관과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수장이 동시에 경질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처럼 기피인물 지정은 국익과 직결된 분쟁 사안이 있을 때 적용을 고려하는 것으로, 외교관 개인의 형사 책임을 직접적으로 묻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외교부 관계자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대사관의 최고 책임자를 초치해 경찰 및 사법당국 수사에 협조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한다"며 "최근에는 외교관 개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공관 차원에서 보직 해임이나 조기 소환 등 자체적인 페널티를 부과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어 "정부는 기피인물 지정 전 단계에서 스스로 출국 조치를 취하도록 유도하며, 각국 공관들도 국가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점차 협조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협조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외교관 면책특권이 가진 본질적인 한계인 것은 분명하다"라고 지적했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