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문제 재논의 불발…한일, 유네스코서 과거사로 대립각(종합)

정부, 세계유산위원회서 공식 의제화 추진했으나 표결 끝 실패
향후 유네스코에서 재논의 어려울 수도

'군함도'로 불리는 일본의 하시마섬.(서경덕 교수 제공) 2024.3.21/뉴스1

(서울=뉴스1) 정윤영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과거 조선인 강제동원 현장이었던 일본의 '군함도'(하시마섬) 문제를 재논의하기 위한 정부의 외교전이 실패로 끝났다.

유네스코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4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군함도)과 관련한 일본의 후속조치 이행 문제를 회의의 공식 의제로 다룰지를 논의했다.

당초 우리 정부는 유네스코의 관례에 따라 '컨센서스'(전원 합의) 방식으로 공식 의제 채택을 시도했지만 일본이 정부의 교섭에 응하지 않아 컨센서스 도출에 실패했다.

정부는 표결을 위해 '일본의 미진한 조치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안건을 제출했고, 일본은 이에 대응해 우리 측의 요청을 삭제하고 '한일 양자 간 논의로 해법을 찾겠다'는 취지의 수정안을 제출했다.

표결은 일본의 안건에 찬, 반 의사를 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고 투표 결과 찬성 7표, 반대 3표, 기권 8표, 무효 3표로 결과적으로 정부가 시도한 군함도 문제의 공식 의제화는 무산됐다. 이에 따라 47차 세계유산위 회의에선 군함도 문제가 논의되지 않는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의 군함도는 지난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일본은 등재 당시 군함도 현지에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충분한 설명을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 않고 있다.

세계유산위는 어떤 문화재가 유산으로 결정되면 2년마다 해당국이 위원회의 결정을 잘 이행했는지 심의한다. 세계유산위는 지난 2018년과 2021년, 2023년에 일본의 '정식 보존현황보고서'(State of Conservation Report·SOC report) 제출에 따라 관련 상황을 점검, 심의한 뒤 일본에 약속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을 내곤 했다.

그러나 지난 2023년 세계유산위는 앞으로 일본이 SOC 보고서가 아닌 최근 현황이 반영된 약식의 '업데이트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방침을 바꾸었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위원국은 194개 유네스코 회원국 중 선거를 통해 선출된 21개국이 구성하고 있는데, 당시 한국은 위원국(임기 4년)이 아니었던 탓에 유네스코의 이같은 결정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일본은 유네스코 규정상 현황 업데이트 보고서 제출 후엔 위원회에서 관련 사안을 심의하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는 주장을 펼쳤고, 한국은 세계유산위에서 위원국은 언제든 특정 유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위원회는 이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으나 결국 위원회는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강제노역'을 알리는 문구가 없는 군함도 내 안내판. (서경덕 교수 제공) 2024.3.21/뉴스1

이번 세계유산위의 결정에 따라 향후 유네스코 차원에서 군함도 문제를 다시 논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보다 세 배 많은 분담금을 유네스코에 내온 일본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정치력'에서 한국이 밀렸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회의가 열리면서 일본이 '전향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일본은 컨센서스를 위한 정부의 교섭에 제대로 응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여론의 흐름에 따라 이번 사안이 한일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날 표결 후 "해당 의제가 정식 안건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우리 정부 대표단은 의제 채택 과정에서 일본이 스스로 약속하고 세계유산위원회가 내린 결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며 "위원회가 이러한 결정의 이행 여부를 직접 점검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역설했다"라고 설명했다.

또 "위원국들과의 사전 협의 과정에서 세계유산위 결정의 이행 점검은 위원회 차원의 정당한 권리이자 원칙임을 강조했고, 많은 위원국이 이에 공감했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의제 채택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며 "회의 기간 적절한 계기인 의제 7 마무리 세션에서 다시 한번 일본의 결정 불이행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식으로 밝힐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아울러 내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 회의 때도 관련 사안을 제기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yoong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