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국가 해제 해법은 직구 아닌 변화구…'거래주의' 활용해야"

[전문가 진단]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
"바이든과 트럼프 생각 다르다…맞춤 전략 빠르게 수립해야"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본인 제공) 2025.3.17/뉴스1

(서울=뉴스1) 임여익 기자 = 미국 에너지부(DOE)가 지난 1월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에 추가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민감국가 지정은 내달 15일 공식 발효된다. 발효 이후엔 핵·원자력 및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양국 간 협력에 제약이 불가피하지만, 정부는 지난 10일 이 사안이 처음 불거진 후 일주일 넘게 민감국가로 지정된 정확한 이유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날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민감국가에 포함된 것은 국내의 핵 무장론 여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당장은 미국의 결정을 빠르게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그는 민감국가 지정은 바이든 행정부에서 내려진 조치이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는 다른 관점에서 사안을 다룰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이를 빠르게 파악해 정부가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하는 방식에 빠른 변주를 줘 트럼프 행정부와 소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제언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주의적 관점'에 맞는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원곤 교수와의 일문일답.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로 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국내에서 핵 무장 여론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미 에너지부는 국가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경제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을 이유로 특정 국가를 민감국가에 지정하는데, 이 가운데 '핵 비확산'에 우리가 걸리게 된 것으로 본다.

지난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한다든지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라고 발언하는 등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자체 핵무장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는 한국이 안보비용을 더 부담하는 조건으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구성하면서 확장억제력을 강화해 줬고, 소형모듈원자로 협력도 추진하면서 한국이 비핵화 원칙을 준수하도록 단속했는데, 정작 한국에선 핵 무장론에 더 힘이 실리니 '예의주시해야겠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민감국가 지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비상계엄의 여파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민감국가 지정은 매우 오랜 시간, 여러 절차를 걸쳐서 신중하게 이뤄진다. 그런데 비상계엄은 일어난 지 3개월여밖에 되지 않았고, 대통령 탄핵 등 아직 여러 과정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또한 한국의 내치 사안이 원자력과 핵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시점에서 정부가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위해 발휘할 수 있는 외교적 역량은 무엇일까.

▶우리가 민감국가 명단에 포함된 게 바이든 행정부 말기인 1월 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비핵화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에 임기 종료 전 이런 초유의 결단을 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ABB(Anything But Biden·뭐든지 바이든과 반대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이든의 정책에 부정적이기 때문에 정부가 트럼프에 맞는 '변화구'를 던질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본다.

문제는 한국의 리더쉽이 부재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트럼프 행정부의 고위직과 발 빠르게 접촉해야 하는데,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 외교부에서 민감국가 지정 사실을 더 빨리 파악했다면 철회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4월 15일 공식 발효 이전에 민감국가 지정이 철회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곧바로 이를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이 이러한 결정을 하기까지 여러 단계의 논의가 있었을 텐데, 발효 한 달을 남기고 그것을 180도 뒤집기는 쉽지 않다. 미국 행정부가 결정하고 산하 연구기관에 공지까지 한 내용을 한국의 철회 요구가 나오자마자 바꾸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민감국가 지정 후 한미관계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결정 주체가 에너지부인 만큼 핵·원자력·인공지능(AI) 등 관련 분야의 교류에 제한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기관에 수시로 방문했던 한국 과학자들의 방문 조건 및 승인 절차가 까다로워지거나, 승인이 거부될 가능성도 있다. 결론적으로 민감한 기술 및 정보 관련 협력이 이전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이번 조치의 목적이 한국에 '경고'를 주거나 적대시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이 북한과 이란 등을 '테러지원국'으로 명명하며 전 세계에 위험성을 알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미국 정부가 연구기관 등에 '한국의 어떤 변화나 움직임을 좀 더 예민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내부 조치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외부로 내용이 샌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이 한국을 앞으로 좀 더 면밀히 살피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도 수위와 방식을 적절히 조절하며 대응할 여지가 있다.

-'거래주의적 성향'의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현안에 민감국가 사안을 활용할 것으로 보나.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민감국가 지정이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는 아니지만, 지금 한국이 정치적으로는 불안정하고 외교적으로는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장의 한미 현안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민감국가 해제 등을 거래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도 이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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