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시계 제로 한중관계, 30년 자신감으로 미래 설계해야"
[한중수교 30주년-④]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미중 경쟁, 미래 30년 질서 추동…한중, '화(和)'에 지혜 모아야"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한국과 중국이 공식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만 30년이 됐다. 공자(孔子) 말에 따르면 나이 30은 이제 비로소 세상에 나가 무엇을 할지 뜻을 세우는(立志·입지) 시기다. 한중관계도 30년을 맞이했으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함께 뜻을 세워야 한다. 지금 뜻을 잘 세워야 앞으로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고(不惑·불혹), 하늘의 뜻을 알고(知天命·지천명), 어떤 말이든 평안하게 받아들이는(耳順·이순) 순탄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교 이후 양국 교역 규모는 약 47배 증가했고, 한국과 중국 모두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다. 양국 정상회담도 40여 차례 이상 진행됐고, 각계각층의 인적, 물적 교류는 매우 활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 한중 양국을 오가던 항공편은 주 800여 회에 이르렀다. 주한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겪기 전 2016년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은 827만 명으로 1992년 수교 당시 4만5000명에서 20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한중수교 30년을 맞는 이날 양국 관계는 시계 제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치 안개 속을 거닐며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뒤로 물러날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듯하다. 양국 관계를 이끌어왔던 경제에서 상호보완성은 점점 경쟁 관계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한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는 8월20일 현재 6억6700만달러(약 8950억원)로 4개월째 적자를 이어오고 있다.
양국 정치외교 관계는 1992년 수교 이후 '우호협력관계', '21세기를 향한 협력동반자관계', '전면적협력동반자관계',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로 빠른 속도로 격상돼왔다. 하지만 여전히 상호 신뢰의 문제를 안고 있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은 양국 관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주 양국 외교수장이 만나 서로 '화(和)'를 얘기하고 공자를 소환했지만 여전히 공허하다.
최근 미국 퓨리서치 센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80% 가까이가 중국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다. 특히 이른바 MZ세대들의 대(對)중국 인식은 비호감 수준을 넘어 혐오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경제적 호혜의 기회가 줄어드는 대신에 사회문화적 갈등이 점점 쌓여가고 있다. 비호감의 증대는 수교 초기 지리적 인접성과 문화적 유사성으로 매우 견고했던 양국 관계의 심리적 방어 기제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지난 30년 양국 관계의 경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향후 30년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깊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데 자양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먼저, 지난 30년 역사 경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국가 간 관계라는 것이 이익에 기초한 현실주의적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간 상호 이익이 늘 일치할 수는 없다. 그래도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한국과 중국은 상호 이익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특히 경제 영역에서의 상호 이익 증대를 위한 협력의 경험은 미래 30년을 설계하는데 귀감이 될 수 있다.
둘째,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1992년 한중 수교는 사회주의권 몰락과 냉전의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한국과 중국이 결단을 통해서 수교를 이뤄낸 쾌거이다. 질서 변화에 끌려가기보다는 변화에 편승하고 오히려 변화를 추동하면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도전한 결과이다. 만약, 변화를 두려워하고 소극적으로 임했다면 지금의 결과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오늘날 질서 변화도 과감하게 도전해 우리의 전략 공간을 만들 필요가 있다.
셋째, 미래에 대한 신심(信心)을 가져야 한다. 세상사 모든 일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한중관계도 마찬가지다. 관계 측면에서 보면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모두 존재한다. 우리가 양국 관계를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에 공감한다면 부정적인 측면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필요도 있다.
양국 관계의 파국을 원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중국 양국 모두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며 혐오적인 부분을 부각하고 침소봉대하기보다는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측면을 더욱 발굴할 필요가 있다. 인식의 문제가 화두가 되는 상황에서는 의식적으로라도 이를 공론의 장으로 불러내야 한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양국 인식을 훼손하거나 왜곡하는 지엽적인 문제들에 대한 침소봉대(針小棒大·작은 일을 크게 불리어 떠벌림)식 혹은 아니면 말고식 언론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SNS 발달로 인한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들의 사변적인 논의가 공식 매체를 타고 공적 공간으로 옮아가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류 메이저 언론이 사적 논의의 공론화에 사회적 책임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양국 정서를 움직이고 여론을 전달하는 메신저로서 언론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둘째, 자국에 체류하는 상대국 국민에 대한 공공외교(公共外交)를 양적, 질적으로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 언론의 메신저 역할과 함께 이들의 개인 사교 공간에서의 국가와 국민에 대한 이미지 메이킹이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한국 내 체류하는 중국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을 높여야 하고, 중국 내 체류하는 한국인에 대한 중국 사회의 관심을 더욱 높여야 한다. 이들의 상대국과 상대 국민에 대한 인식이 바로 양국 관계 인식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서 변화는 새로운 전략적 사고를 요한다. 1992년 한중수교가 바로 이러한 전략적 사고의 결과물이다. 미중 전략경쟁이 미래 30년 새로운 질서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한중 양국이 30년 전에도 그랬듯이 과감한 사고에 기초한 전략적 판단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변화에 휩쓸리지 않고 변화를 앞서 이끄는 노력이 요구된다. 한중 외교수장이 '화(和)'를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왜 한중 양국이 '화'를 해야 하는지는 불문가지다. 어떻게 할지에 대한 양국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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