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베이징서 '어게인 평창' 기대 접은 이유는
美 주도 '외교적 보이콧'·오미크론·종전선언 '험로'
전문가 "종전선언 北 호응 없어 초입부터 막힌 것"
- 노민호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29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계기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을 사실상 접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주도의 '외교적 보이콧',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종전선언 추진 상황 등이 영향을 끼쳤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정 장관은 이날 내신 기자와의 간담회에서 '내년 올림픽 계기 남북 또는 남북중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베이징 올림픽을 남북관계 개선의 하나의 계기로 삼기로 희망했다"며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런 기대가 사실상 어려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그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하지만 한반도에 훈풍이 불어왔던 '2018 평창 어게인' 시나리오의 재현을 기대하고 있다는 기류가 곳곳에서 감지돼 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1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베이징 동계올림픽도 (북한이 참석했던 평창 때처럼)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역내 평화의 올림픽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청와대와 정부가 불과 보름 전만해도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단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련의 상황에서 이번 정 장관의 발언은 베이징 올림픽과는 별개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최근 명확한 상황 판단을 하는 계기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코로나19 새 변이 '오미크론' 확산이라는 변수가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요청으로 베이징 올림픽 때 참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일부 목소리가 있었지만 사실 북한이 코로나19 대응에 극도로 예민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었다.
이와 관련 대표적인 예로 북한은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혈맹' 중국과도 2년 가까이 국경을 걸어 잠그고 있는 상황을 들 수 있다. 대북제재 해제와 같은 실익을 거둘 상황도 아닌 데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낮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었다.
또한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외교적 보이콧' 행보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재까지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한 국가는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첩보동맹) 참여국과 일본, 리투아니아와 코소보뿐이다.
지금까지 미국은 '동맹국 동참 요청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내년 올림픽 개최 날짜가 다가왔는데도 참여국이 적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제로섬 게임'인 이번 외교적 보이콧 '대결'에서 미국의 목소리에 동참하는 국가가 적다면 결국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 이에 올림픽 개막이 가까워지면 미중 간 '신경전'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종전선언 추진 상황이 '변수'를 맞이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베이징 올림픽에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한 만큼, 남북미중 종전선언 추진 구상이 애초에 실현 불가능하고 북한이 당장 적극적으로 호응할 여건이 아니라고 정부가 판단했을 수 있다.
현재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 협의는 사실상 마무리 된 상태다. 정 장관은 이날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며 "(지난 11~12일) 리버풀에서 개최된 G7(주요 7개국) 외교장관회담에서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만나 이러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 대북 제의 카드를 '최적의 시점'에 꺼내들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가늠할 계기는 북한이 현재 진행 중인 당 전원회의가 될 전망이다.
전원회의에서 북측이 우호적인 대남, 대미 메시지를 발신할 경우 종전선언 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겠지만, 미국이 '대북적대 정책·이중기준 철폐'라는 북한의 대화 선결조건에 원론적인 태도만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김 총비서가 핵·탄도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유예) 철폐를 시사하는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정 장관은 아울러 이날 내신 기자회견에서 '종전선언 추진에 있어 중국 측으로부터 북한의 최근 반응을 전달 받은 게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종전선언 관련해 중국 측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전달 받은 것은 없다"고 답했다.
즉 정부가 북한의 반응이 불투명한 상황과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으로 최적의 여건이 아니라고 판단해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 '어게인 평창'의 기대를 접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베이징에서 일단 남북이 만난다는 전제가 처음부터 어려운 것"이라며 "김 총비서가 올 가능성도 극히 낮았고 문 대통령도 가는 게 쉬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조심스럽지만 종전선언에 대해 북한이 응해야 그 다음에 베이징에서의 남북관계 개선도 의미가 생기는 것인데 '초입' 부분부터 막혀버린 게 아닌가 싶다"며 "우리 정부가 전원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베이징으로 북한이 움직일 가능성은 낮다. 오미크론을 생각했을 때 북중 양측 모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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