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해도 소용없다"…간호사 10명 중 4명 인권침해, 76%는 침묵
폭언 88.9%·직장 내 괴롭힘 67.1%…"안 바뀌겠지" 신고조차 포기
인력 증원 요구 80.7%…신규간호사 58.7%, 교육 1주일도 못 받아
- 강승지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신고해도 달라질 게 없다."
병의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10명 중 4명 이상이 최근 1년간 인권침해를 경험했지만, 피해자의 76.4%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조사됐다. 신고 이후에도 기관의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이 68.1%에 달해, 간호사 보호 체계가 현장에서 사실상 무력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간호협회 간호노동개혁위원회는 6일 국회에서 '의료기관 내 간호사 인권침해 예방과 근무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고 이런 내용의 '2026 의료기관 근무 간호사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의료기관 근무 간호사 210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최근 1년간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은 41%에 달했다. 피해 유형별로는 폭언이 88.9%로 가장 많았다. 이어 직장 내 괴롭힘 67.1%, 성적 폭력 17.7%, 신체적 폭력 17% 순이었다.
피해를 본 간호사들이 신고를 포기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침해 경험자의 76.4%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신고해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가 83.8%로 가장 많았다. 승진이나 조직 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응답이 36.7%였다.
신고를 하거나 대응에 나선 간호사들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응 이후 기관에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이 68.1%로 가장 많았다. 가해자와 분리됐다는 응답은 12.7%, 공식 조치가 이뤄졌다는 응답은 7.4%에 불과했다. 문제가 해결되거나 상황이 개선됐다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피해, 신고, 보호, 재발 방지로 이어져야 할 보호 체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정치권에서도 간호사 인권침해를 개인의 적응이나 인내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인력과 업무체계, 조직문화 등 구조적 문제로 진단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과 제도가 발전했지만, 간호사들이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과 제도가 병원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게 과제"라고 설명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인권침해의 바탕에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과중한 업무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 의원은 적정 인력 기준의 법제화와 의료기관 내 실질적인 인권 보호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날 토론자들도 간호사 인권침해를 개인 간 갈등이나 특정 직종의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현장 간호사 A 씨는 "간호사들끼리의 싸움으로만 보지 말고 간호사를 그런 자리로 몰아넣는 구조를 봐달라"면서 "신규간호사가 질문할 수 있는 환경, 선배 간호사가 교육에 필요한 시간을 보장받는 근무 체계, 환자·보호자의 폭언에 병원이 적극 대응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실태조사에서도 구조적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간호사들이 꼽은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는 '간호사 인력 증원'이 80.7%로 압도적인 1위였다. 법적 보호 강화 47.6%, 조직문화 개선 및 '태움' 근절 41.9%, 폭력 예방 대책 강화 39.2%, 기관 보호 체계 강화 31.4%가 뒤를 이었다.
신규간호사 교육도 부실했다. 58.7%가 부서 배치 전 교육을 1주일 미만 받았다. 교육 전담간호사 배치 역시 의료기관 유형별 격차가 컸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 수 역시 의료기관 규모에 따라 최대 3~4배 차이가 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경림 간호협회 회장은 인력 부족과 교육 부족, 부적절한 대응체계가 인권침해를 낳는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2018년과 2019년, 2021년에 이어 2026년에도 신규간호사의 비극이 발생한 현실을 언급하며 "이제는 반복되는 비극의 고리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도 사후 처벌을 넘어 예방과 피해자 보호·회복까지 아우르는 대응체계 강화를 약속했다. 송유나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장은 노사 공동의 조직문화 개선을, 조하진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적정 근무 여건과 교육, 상담·신고·보호 체계 마련을 각각 강조했다.
한편, 간호협회는 △의료기관 종별·환자 중증도 등을 반영한 최소 간호인력 기준 마련 △신고 이후 보복 방지 △조사·재발 방지·사후관리 연계 △교육 전담간호사 확대 △신규간호사 교육 기간 보장 △정기 실태조사와 표준지표 마련 등을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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