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됐는데 상업화는 원점…K-줄기세포, 규제 예측 가능성 절실

[줄기세포 연간기획]⑩ "잘 만든 제도, 민관이 함께 다듬을 때"
복지부도 상용화 촉진 지원 착수…식약처, 맞춤 상담·교육 제공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 5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 그랜드 볼룸에서 열린 '바이오 혁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에게 질문을 받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재판매 및 DB 금지) ⓒ 뉴스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줄기세포가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연구 성과가 환자 치료로 이어지는 데에는 장벽이 존재하고 있다. 임상과 허가를 넘어 상업화까지 이뤄지도록 연결고리를 보완하는 한편 △데이터 인정 △건강보험 급여 △인프라 확충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뒤따르고 있다.

연구 초기부터 제품화 고려할 치료제 개발체계 필요

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줄기세포는 재생의료 분야의 유망한 세포 공급원으로서 새로운 치료법의 연구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용되고 있다. 다만 연구로 확보된 기술과 데이터가 실제 치료제 개발로 연결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연구에서 충분한 성과를 냈더라도 임상시험과 허가 단계에서 안전성·품질·제조에 추가로 검증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연구로 적법하게 수립된 배아줄기세포주라도 실제 치료제로 개발하려면 원료세포의 유래, 기증자 적격성, 일정 품질로서의 제조·관리 자료가 필요하다. 연구를 시작할 때 치료제 개발까지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런 자료를 나중에 확보하기 어려워, 허가 신청에 좌절을 겪는 경우가 많다.

연구와 상업화의 단절은 제도에서도 나타난다. 현행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단재생바이오법) 체계에서는 국내 임상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다뤄야 치료계획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해외에서 이미 축적된 임상시험, 연구 데이터나 법 제정 이전의 국내 임상연구 결과를 활용할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

이로 인해 해외에서 이미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인된 치료조차 국내에서 처음부터 임상연구 단계를 밟아야 한다. 또 법의 적용을 받는 연구·치료 트랙(첨단재생바이오법)과 허가·상업화 트랙(약사법)이 분리돼 있어 임상연구에서 축적된 데이터가 허가 심사에 반영되지 않는다. 연구자와 기업으로서는 연구는 됐는데 상업화 경로가 원점인 상황이 반복된다.

이와 관련, 박장환 범부처재생의료기술개발사업단 단장은 사견을 전제로 "규제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구자가 초기 연구 때부터 임상시험과 허가까지 염두에 두고 세포주 구축·제조공정·품질관리·비임상시험을 설계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게 해법"이라며 "규제 완화보다, 연구 초기부터 제품화를 고려하는 개발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美·日 규제 유연화로 상용화 앞당겨…한국은 어떤가

미국은 첨단재생의학치료제(RMAT) 신속심사제도 등으로 개발 초기부터 협의하며 임상·허가 전략을 구체화할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도 재생의료 제품 특성을 반영한 조건·기한부 승인제도로 연구자 주도 임상으로 시작된 iPSC(유도만능줄기세포) 유래 파킨슨병 치료제를 세계 최초로 조건부 승인한 바 있다.

특히 일본 후생노동성은 중증 심부전, 진행성 파킨슨병 치료제 등 재생의료 제품 2종의 제조·판매를 승인하며 당뇨병·실명 치료로 적용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10명도 안 되는 소수의 환자 임상 데이터만으로도 조건부 승인을 내준 일본의 규제가 혁신제품 개발을 이끈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중증 심부전, 진행성 파킨슨병 치료제 등 재생의료 제품 2종의 제조·판매를 승인하며 당뇨병·실명 치료로 적용 범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다. 10명도 안 되는 소수의 환자 임상 데이터만으로도 조건부 승인을 내준 일본의 규제가 혁신제품 개발을 이끈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현장 전문가들은 줄기세포를 둘러싼 국내의 규제 경쟁력이 뒤떨어지진 않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지난 2011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치료제 '하티셀그램-AMI'를 허가했으며 전용 법체계와 신속심사, 전 주기 안전관리 체계를 완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에 비해 "연구 인프라는 상위권인데, 상업화 속도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리 국민은 일본으로 '줄기세포 망명'을 떠나고 있으며 수많은 환자가 해외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받고 있다. 한국이 우수한 의료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유연하지 않은 규제 등으로 글로벌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 규제가 미국·일본보다 엄격하거나 부족하다고 볼 수 없으나 상업화가 어려운 실태는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정석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장은 "줄기세포치료제는 살아있는 세포를 다루다 보니 여타 의약품과는 허가심사 방식이 많이 다르다. 치료제 특성을 반영한 심사와 기준이 제시되면 좋겠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바람"이라면서 "해외 판단 근거를 문서로 공개하는 관행이 더 발달했고 해외 업체는 초기부터 글로벌 허가를 염두에 두고 개발전략을 설계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민관 함께 제도 다듬어야…연구비 지원에만 머물면 안 돼

민관이 함께 기존 제도를 다듬어야 한다는 게 현장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원 방식은 고도화돼야 하며 성과가 확인된 유망 연구과제가 다음 단계로 이행될 때 국가 인프라와 역량을 적극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신속히 허가돼도 건강보험 급여에서 지체되면 환자에겐 '그림의 떡'이 되는 만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제언도 언급됐다.

박 단장은 "앞으로의 경쟁력은 규제를 계속 완화하거나 새 제도를 만드는 데 있지 않고 개발자가 뭘 준비해야 하는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느냐에 달렸다"며 해외·과거 임상데이터 인정 범위 확대와 건강보험 급여 연계 그리고 세포처리시설·산업 인프라 구축을 조언했다. 또 "연구비 지원에 그치지 않고 제품화 인프라·역량과 개별 제도 개선이 함께 연계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줄기세포치료제를 세계 최초로 허가했음에도 다른 줄기세포치료제의 상업화는 요원하다. 유효성 입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면 된다"면서 "인공지능(AI) 등으로 투자와 관심이 쏠리는 국면에서 정부는 민간투자 위축을 보완해 바이오 업계의 R&D 연속성을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진입은 조금 넓히되 정해진 기간 내 확증 근거를 갖추게 하는 구조라면 기업에는 예측 가능성을, 국민에게는 접근성과 안정성을 함께 보장해 줄 수 있다"면서도 "개발 초기 설계와 근거 축척, 그리고 허가와 건보 급여 전략을 처음부터 세우는 일은 제도가 대신해 줄 수 없다. 기업의 몫"이라고 전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3월 24일 서울 서초구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열린 제약바이오벤처 혁신성장 전주기 협업방안 발표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스1 김진환 기자

한편, 보건복지부는 대체 치료제가 없는 중대희귀난치질환에 대해 허가 전에도 의료기관이 줄기세포 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으며 △무릎 골관절염 △난치성 만성통증 △혈액암 △재발성 교모세포종에 대한 상용화 촉진을 지원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개발 초기부터 허가까지 첨단바이오의약품에 대한 맞춤 상담·교육을 제공하며 상업화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