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로 익힌 응급 수혈장비…준비시간 62% 줄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 간호사 42명 무작위 대조 연구
첫 학습시간은 길었지만 실제 장비 조작 속도·독립성 향상

(삼성서울병원 제공)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증강현실(AR)을 활용해 응급 수혈 장비 사용법을 교육한 결과 실제 장비 준비시간이 기존 교육보다 62% 단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서울병원은 손명희 응급의학과 교수와 간호본부 응급간호파트 연구팀이 응급실 간호사를 대상으로 AR 기반 '레벨1 급속 주입기' 교육 효과를 분석한 무작위 대조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24일 밝혔다.

증강현실은 현실 공간이나 실제 사물 위에 문자와 영상 등 디지털 정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 가상공간을 구현하는 가상현실(VR)과 달리 사용자가 실제 장비를 보면서 필요한 정보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다.

레벨1 급속 주입기는 저혈량성 쇼크나 중증 외상 또는 대량 출혈로 체내 혈액이 부족한 환자에게 수액과 혈액을 빠르게 주입하는 장비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신속하고 정확하게 조작해야 하지만 실제 사용 빈도가 낮아 의료진이 숙련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레벨1 급속 주입기를 사용한 경험이 없는 응급실 간호사 42명을 모집해 각각 21명으로 무작위 배정했다. 한 그룹은 AR 교육을 받았고 다른 그룹은 기존 지침서를 활용해 스스로 학습했다.

무작위 대조 연구는 연구 참여자를 임의로 여러 집단에 배정한 뒤 서로 다른 중재의 효과를 비교하는 연구 방식이다. 참여자의 특성이나 연구자의 판단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AR 교육을 받은 간호사들은 증강현실 장비인 '홀로렌즈2'를 착용하고 실제 급속 주입기를 조작했다. 교육 과정에서는 단계별 설명과 필요한 준비물이 홀로그램으로 표시됐고 조작해야 할 위치도 시각적으로 안내됐다. 복잡한 과정에는 짧은 시연 영상이 함께 제공됐다.

처음 사용법을 배우는 데 걸린 시간은 AR 교육그룹이 중앙값 18.02분으로 기존 교육그룹의 8.98분보다 길었다. 하지만 교육을 마친 뒤 실제 장비를 조작하는 과정에서는 AR 교육그룹의 수행 속도가 빨랐다.

장비 준비시간은 기존 교육그룹이 9.85분이었지만 AR 교육그룹은 3.67분으로 62% 단축됐다. 장비 준비부터 수액 주입과 수혈까지 포함한 전체 수행시간도 기존 교육그룹 13.63분에서 AR 교육그룹 5.83분으로 줄었다.

총 22단계로 구성된 장비 작동 과정에서 AR 교육그룹은 주변 의료진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반면 기존 교육그룹은 두 차례 도움을 요청했다. AR 교육그룹은 교육 만족도와 장비 조작에 대한 자기효능감도 더 높았다.

연구팀은 AR 교육이 문서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장비를 직접 만지면서 단계별 조작법을 익히게 한 점이 수행 능력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사용 빈도는 낮지만 응급상황에서 즉시 다뤄야 하는 의료기기의 교육 공백을 보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삼성서울병원은 약 4년 전부터 AR 장비를 의료진 교육에 도입했다. 2022년부터는 간호교육팀과 함께 인공호흡기와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등 의료기기 교육에도 AR을 활용하고 있다.

손 교수는 "응급의료는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정확하고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며 "자주 사용하지 않는 중요 의료기기와 다양한 임상 상황을 AR로 사전에 반복 학습한다면 의료진의 역량을 강화하고 예기치 않은 응급상황에 체계적으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실제 의료현장에서 활용하기에 하드웨어적 한계가 있다"며 "더 가볍고 편안하면서 성능이 향상된 차세대 기기가 등장하면 의료진 교육과 임상현장에서 훨씬 자연스럽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연구는 보건복지부 재원으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보건의료기술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JMIR 의학교육' 최근호에 게재됐다.

kuko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