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 간 절대 안 받겠다던 아버지, 고집 꺾고 한국 온 사연은

간암 아버지에 프랑스 의료진도 이식 불가 판단
의사 아들 설득에 아산병원 방문…새 삶 찾았다

모하메드씨가 자신에게 간을 기증해 준 두 아들과 간병해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아버지, 저희랑 같이 한국에 가셔야만 살 수 있어요."

말기간부전에 간암까지 앓던 아버지를 살리려 1만㎞ 떨어진 한국에서 간이식을 진행해 기적적으로 삶의 희망을 되찾은 모로코 삼부자의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의 세계적인 생체간이식 경험도 한몫했다.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센터 간이식팀은 최근 말기간부전과 진행성 간암을 앓던 모하메드 엘 케타니 씨(64·남)에게 두 아들의 간 일부를 이식하는 2대1 생체간이식을 마쳤다고 30일 밝혔다. 공여자인 두 아들과 수혜자인 모하메드 씨는 수술 후 순조롭게 회복해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다.

20년 전 북아프리카 서쪽 모로코에서 대형 정유회사를 운영하던 모하메드씨는 C형 간염을 앓기 시작했다. 10년 전 신약을 복용하면서 간염 자체는 치료됐지만, 오랜 투병으로 인해 간의 85%가 손상됐고 간경화와 간부전이 생겼다.

남은 15% 간으로 버텨오던 중 코로나를 겪으며 간에 다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로코와 프랑스 이중국적자였던 모하메드씨는 지난해 말 프랑스에서 간이식을 위한 대기자 등록 검사를 받았고, 이 과정에서 간암 극초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색전술로 종양을 제거해 큰 위기를 넘긴 듯했으나 올해 2월 추적 검사에서 처음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종양이 확인됐다. 두 번째 종양은 크기가 6㎝로 진행 속도가 매우 빨랐고 간 내 문맥에도 침범한 상태였다.

프랑스 의료진은 더 이상 간이식이 어렵다고 판단했고, 모하메드씨는 이식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자 모하메드씨의 두 아들이 나섰다. 프랑스에서 심장외과 의사로 일하는 둘째 아들 오마르 엘 케타니씨(30)는 형 하침 엘 케타니씨(33)와 함께 세계적인 간이식센터를 찾아 나섰다.

한시가 급한 아버지는 뇌사자 간이식을 기다릴 수 없었고 마지막 남은 희망은 생체간이식뿐이었다. 형제는 전 세계 간이식센터의 논문을 찾아 읽은 끝에 서울아산병원을 알게 됐다. 서울아산병원은 생체간이식만 연간 400례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간이식센터도 뇌사자 간이식 비중이 높아 생체간이식은 연 10례에 불과했으며,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도 연 30례 수준이었다. 서울아산병원은 1992년 간이식을 처음 시행한 이후 지난해 초 단일 의료기관으로는 세계 최초로 간이식 9000례를 달성한 바 있다.

모하메드씨는 간을 기증하겠다는 두 아들 걱정에 한국행을 거부했지만, 아들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은 생체간이식에서 세계 1위인 데다 기증자 사망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며 모하메드씨를 설득했고 삼부자는 올해 4월 초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만 모하메드씨는 이식을 진행하기에 장애 요소가 많았다. 진행성 간암은 이식하면 조기에 재발하고, 재발 이후에는 암이 급속히 진행할 가능성이 컸다. 체중도 135㎏에 달하는 등 대사 요구량을 충족할 만한 충분한 크기의 간을 제공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진은 2대1 생체간이식을 결정했다. 이는 한 사람의 간 기증으로는 이식되는 간 용량이 충분하지 않거나, 남은 간 용적으로 기증자 생명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따를 때 적용하는 수술법이다.

모하메드씨가 자신의 간이식 수술을 집도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의 이승규 석좌교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서울아산병원 제공)

서울아산병원 간이식·간담도외과의 이승규 석좌교수가 2000년 세계 최초로 고안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지금까지 모하메드 씨와 같은 절체절명의 말기간질환 및 간암 환자들에게 664례의 2대1 생체간이식을 독보적으로 시행하며 세계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둘째 아들 오마르씨는 아버지와 혈액형이 맞지 않았지만, 서울아산병원은 1100례 이상의 혈액형 불일치 간이식 경험을 토대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증자 간절제는 간이식·간담도외과 송기원·정동환 교수가, 모하메드씨 간이식은 이승규 석좌교수와 문덕복 교수가 집도했다.

5월 22일 아침에 시작된 수술은 새벽 2시를 넘겨 장장 17시간 만에 끝이 났다. 첫째 아들의 간 좌엽 기증자 수술은 최소절개기법으로 복부에 10㎝ 미만 작은 절개만 내어 진행됐다. 둘째 아들의 간 우엽 기증자 수술은 복강경을 이용해 흉터와 합병증 발생을 최소화했다.

모하메드씨의 간은 간경변증으로 크기가 줄고 복수가 많이 차 있었다. 간세포암이 간문맥을 침범한 걸로 의심돼 수술 중 종양을 최대한 건드리지 않는 무접촉 기법을 적용해 간 전체를 절제했다.

이후 두 아들에게서 받은 간을 이식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식된 간이 안착하기에는 모하메드 씨의 횡격막 아래 공간이 생각보다 좁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신을 포함한 오른쪽 신장을 배 앞쪽 아래로 살짝 이동시켜 공간을 확보한 결과 오른쪽 간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환자의 원활한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됐다. 수술실마다 10명의 의료진이 참여하는 등 힘든 수술이었지만 삼부자는 순조로운 회복세를 보였고, 다음 주 모하메드 씨까지 무사히 퇴원할 예정이다.

이승규 교수는 "모로코 삼부자가 머나먼 한국까지 찾아온 것은 우리나라 간이식 수준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전 세계 말기간질환 및 간암 환자들이 서울아산병원에서 건강을 되찾고 고국에서 새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모든 간이식팀 의료진이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모로코 삼부자 가족이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서울아산병원 제공)

모하메드씨는 "두 아들 덕분에 서울아산병원을 만나 기적처럼 건강을 되찾았다. 인간애가 없는 의술은 그저 장사에 불과하다. 의료진은 누구보다 환자의 감정을 따뜻하게 보듬어 줬고 한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새 삶을 선사해 준 의료진에게 깊은 축복을 전한다"고 전했다.

오마르씨는 "프랑스에서 심장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나로서는 언젠가 서울아산병원에서 연수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아버지를 위해 나의 간 일부를 기증할 수 있고 아버지가 다시 건강해지신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