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정까지 떠나는 세포치료 환자들…韓도 치료 문턱 낮춘다

[줄기세포 연간기획]⑦ 자가 면역세포 '저위험' 조정…선행 임상 없이 치료계획 심의 가능
日보다 엄격한 국가심의 유지…"접근성 확대만큼 환자 보호도 중요"

편집자주 ...줄기세포 치료는 재생의학의 핵심 기술로 부상했지만, 임상 근거 부족·과장 광고·규제 공백 등 구조적 문제가 동시에 드러나고 있다. 국내외 연구·산업 현황을 짚고, 법·제도 미비와 시장 혼탁 문제를 진단한 뒤, 한국형 재생의료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챗GPT 활용한 AI 이미지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국내 병원에서 지방조직과 혈액을 채취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배양된 줄기세포와 면역세포를 투여받는다. 총 6회 치료 비용은 4510만 원이다.

국내 한 바이오기업의 특수관계사가 운영한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서 세포를 채취하고 일본 병원에서 배양과 투여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업체가 수수료를 받고 해외 의료기관에 환자를 소개하거나 알선했다면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치료가 일본에서 이뤄지면 치료 행위 자체를 국내법으로 직접 관리하기 어렵다.

수천만 원의 비용과 불확실한 효과에도 환자들이 해외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치료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표준치료가 듣지 않거나 더 이상 시도할 치료가 없는 중증·난치질환 환자에게 해외 의료기관이 내세우는 '치료 가능'이라는 문구는 마지막 기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본, 자비 진료로 재생 의료 문 열어놔…중국 러청, 의료관광객 유치

일본이 세포치료 원정의 주요 목적지가 된 배경에는 재생의료를 자비진료 형태로 제공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일본은 지난 2014년 재생의료안전성확보법을 시행해 의료기관에서 이뤄지는 비승인 재생의료도 관리 대상으로 편입했다. 위험도에 따라 치료계획을 심의받아 제출하고 이상반응과 치료 현황 등을 보고하도록 한다.

이에 따라 의약품으로 정식 허가되지 않은 세포치료도 일정한 절차를 거쳐 환자에게 자비진료로 제공할 수 있다. 자가 지방이나 골수 등에서 얻은 세포를 이용한 관절질환과 만성통증 치료뿐 아니라 항노화·미용 목적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다만 일본 정부가 치료계획을 접수했다는 사실이 효과를 인정하거나 의약품으로 허가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치료비는 대부분 환자가 전액 부담하며 안전성과 장기적인 효과에 관한 근거도 치료마다 다르다.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 뉴스1 이호윤 기자

실제 일본 후생노동성은 올해 3월 자가 지방유래 중간엽줄기세포로 만성통증 치료를 받던 한국인 환자가 숨지자, 해당 의료기관과 세포 제조시설에 치료와 제조를 일시 중단하라는 긴급명령을 내렸다. 사망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환자에게 투여된 세포가공물은 서울에서도 배양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에서는 하이난성 보아오 러청 국제의료관광선행구가 새로운 원정 치료 목적지로 부상하고 있다. 해외 혁신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중국 본토보다 먼저 사용할 수 있는 특례를 바탕으로 줄기세포와 면역세포 및 유전자치료 등을 도입하고 있다.

하이난성 정부에 따르면 러청 특구에는 40곳이 넘는 의료기관이 들어섰다. 올해 1분기 해외 의료관광객은 3053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약 8배 증가했다. 다만 이는 모든 진료 분야를 포함한 수치로 한국인 줄기세포 치료 환자 규모와 개별 치료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도 저위험 세포부터 문턱 낮춘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2월 첨단재생의료 치료제도를 시행했다. 기존에는 임상연구만 가능했지만 개정 첨단재생바이오법 시행 이후 대체치료제가 없는 중대·희귀·난치질환 환자는 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환자 부담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됐다.

첫 치료계획은 지난 4월 승인됐다. 여의도성모병원이 신청한 엡스타인바 바이러스 양성 림프절외 NK/T세포 림프종 환자 대상 자가 면역세포 치료다. 대상 환자는 15명이며 치료 비용은 7620만 원이다.

복지부는 이 치료가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받은 신의료기술이나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아니라고 안내했다. 임상 2상 결과를 토대로 제한된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하는 단계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월 6일 오전 서울 중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제2차 첨단재생바이오 기업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뉴스1

정부는 최근 배양한 자가 면역세포의 위험도를 중위험에서 저위험으로 낮추기로 했다. 후속 절차가 마무리되면 자연살해세포(NK세포) 등 환자 본인의 면역세포를 배양해 다시 투여하는 치료는 동일한 내용의 국내 임상연구를 먼저 마치지 않고도 치료계획 심의를 신청할 수 있다.

다만 다른 임상연구 결과나 문헌 등 안전성 자료를 제출하고 심의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세포는 허가받은 시설에서 배양해야 하며 치료기록과 비용 및 이상반응 보고 의무도 적용된다. 이번 조정은 자가 면역세포에 한정돼 지방유래 중간엽줄기세포 등 모든 줄기세포 치료의 문턱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해외 원정 수요가 높은 질환을 국내에서 직접 검증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복지부는 지난 21일 '제2차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기본계획'을 확정하고 무릎 골관절염과 난치성 만성통증 및 혈액암과 재발성 교모세포종 등 4개 질환에 대한 정부 주도 다기관 임상연구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무릎 골관절염과 난치성 신경병증성 통증 및 재발성 교모세포종 임상연구는 지난달 심의위원회를 통과했다. 무릎 골관절염 연구기간은 21개월로 이르면 오는 2028년 하반기 국내 치료 실시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다만 연구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2년이 걸려 당장 해외로 나가는 환자의 대안이 되기에는 시차가 불가피하다.

'치료 가능'과 '효과 입증'은 다르다

국내외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해당 치료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됐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구 단계의 세포 투여가 '치료'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면 환자가 이미 효과가 확인된 치료제처럼 받아들이는 '치료적 오인'이 발생할 수 있다.

김병수 고려대 안암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아직 연구가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구대상자에게 투여되는 연구 결과물이 마치 치료제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증명된 것처럼 연구대상자들을 오해하게 할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해외 원정 치료를 줄이기 위한 해법은 규제를 단순히 완화하거나 유지하는 데 있지 않다. 근거가 축적된 치료부터 국내 접근성을 넓히되 해외 치료의 부작용과 결과를 추적하고 알선업체의 과장광고와 수수료 구조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이준미 복지부 재생의료정책과장은 "해외 줄기세포 치료가 좋다고 해서 고액의 원정 치료를 받으러 갈 때 그 치료가 과학적 근거가 완비됐는지 안전관리가 완비됐는지 확인되지 않아 위험에 노출됐다"며 "향후에는 국내에서 임상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확인된 치료를 국가의 안전관리 체계 내에서 받을 수 있어 국민의 치료 기회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kuko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