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보다 더 걱정은 오늘 잘 곳"…치료 버팀목 '희귀질환자 쉼터'
[희귀질환] 단순한 숙박공간 넘어 치료 지속 돕는 '안전망'
심리상담·미술치료, 자조모임도 지원…"불안·고립감 해소"
- 조유리 기자
(서울=뉴스1) 조유리 기자 = 희귀질환자 최성미 씨(52)가 서울행 기차표를 예매하기 전 가장 먼저 확인하는 건 병원 진료 일정이 아니다.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숙소다. 진료는 예약할 수 있지만, 돌아갈 곳은 매번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2일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희귀질환자 쉼터에서 만난 최 씨는 포항에서 서울 대형병원을 오가며 치료받고 있다. 최 씨는 베체트병과 가족성 다발성 용종증에 더해 최근에는 쇼그렌 증후군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들었다. 이외에도 류마티스 관절염과 갑상샘암 재발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현재 피부과, 류마티스내과, 구강내과 등 여러 과를 돌며 치료받고 있다. 외래 진료나 검사 일정이 하루에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서울에 도착한 날 당일 집으로 돌아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 씨는 "새벽에 서울에 도착하면 택시가 잘 잡히지 않아 추위 속에서 한참 동안 기다리는 건 일쑤고, 야간에 추가 검사를 하고 나서는 열차가 없어 집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아파서 온 건데, 그 이후의 시간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검사가 잦고 장기 추적관리가 필요한 희귀·난치성질환의 특성상, 환자와 보호자가 거주지를 떠나 수도권의 대형 병원을 찾는 경우가 흔하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담은 단순히 교통비에 그치지 않는다. 추가 검사·치료로 병원 근처에서 며칠을 더 보내는 경우가 잦아 예상하지 못한 숙박비가 뒤따르며, 입원하게 될 경우 가족의 휴가 사용, 생계 문제까지 이어진다. 치료 자체보다 '치료를 받기 위해 버텨야 하는 시간'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또 다른 짐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부담을 덜기 위해 마련된 공간이 바로 '희귀질환자 쉼터'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가 질병관리청의 지원을 받아 지난 2007년부터 운영해 오고 있다. 올해로 20년째다. 최 씨처럼 지방에서 수도권 의료기관에 방문해야 하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단기 무료 숙박을 제공한다. 별도의 소득이나 연령 제한 없이 전화 예약만으로 이용할 수 있어 접근성도 높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쉼터를 이용해 온 최 씨는 "무엇보다 금전적인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어 감사하다"며 "시설이 청결하고, 편안하게 숙박하면서 진료받을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럽다"고 전했다.
쉼터 이용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쉼터를 이용한 이들은 825명에 달했다. 월평균 약 70명 내외가 이용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러 차례 쉼터를 다시 찾는 재이용자도 적지 않다. 쉼터가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99%가 '만족한다'고 답했다.
장기간 치료를 이어가는 희귀질환자들에게 부담은 신체적인 고통에만 그치지 않는다. 반복되는 검사와 예후에 대한 불안, 생계와 돌봄 문제까지 겹치면서 심리·정서적 소진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유로 쉼터는 숙박뿐 아니라, 심리·정서 지지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한다. 지난해 심리상담과 미술치료 이용자는 30명, 총 360건으로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불안과 고립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한다. 쉼터는 질환별 자조 모임을 통해 치료 경험과 정보를 나눌 수 있도록 지원한다. 지방 거주 등으로 대면 참여가 불가한 상황을 고려해 온라인 프로그램을 병행하고 있다. 쉼터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김진화 부장은 "희귀질환의 경우 환자 수가 희소한 만큼 정보 또한 희소해 불안감이 클 수 있는데, 온오프라인으로 질환별 자조모임 운영을 지원해 환자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상호 교류할 수 있게 돕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 만족도는 만점이다.
이처럼 희귀질환자 쉼터는 단순한 숙박 지원을 넘어, 치료 과정 전반을 버텨낼 수 있도록 돕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만점에 가까운 이용자 만족도와 재이용률은 쉼터가 현장에서 갖는 의미를 보여준다. 그런데도, 현실적인 한계도 존재한다. 김 부장은 "몸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군 배낭처럼 커다란 짐을 들고 지방과 서울을 오가고 있다"며 "현재 서울에 쉼터가 한 곳뿐인데, 주요 대형 병원 인근에만큼은 작게라도 쉼터가 추가로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쉼터'는 잠시 머무는 공간이라는 뜻이지만 '희귀질환자 쉼터'는 환자에게 치료와 삶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필수 공간이다. 최 씨는 다음 달에도 열흘가량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쉼터가 주말에는 격주 운영을 하면서, 일부 일정은 다른 숙소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안고 수도권 병원을 오가는 희귀질환자는 전국에 45만 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ur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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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내 인구의 약 0.9%를 차지하는 희귀질환자는 '희귀하다'는 이름과 달리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희귀질환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각 질환별 환자 수는 매우 적어, 환자와 의료진 모두 진단과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정부는 희귀질환자의 조기 진단과 치료 접근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뉴스1은 질병관리청과 함께 희귀질환자와 그 가족이 처한 현실과 이들을 둘러싼 제도적 노력과 과제를 집중 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