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요양보호사의 사회적 가치와 돌봄의 의미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저출산과 맞물려 매우 빨라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지역사회 돌봄통합 제도의 정비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국가자격증인 요양보호사는 장기요양보험 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핵심 돌봄 자원으로, 재가요양센터나 요양원에서 근무한다. 요양보호사의 업무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근거해 장기요양보험 수급자의 일상생활 지원, 신체 활동 보조, 정서적 지지 등 서비스 내용이 표준화돼 있고, 기록·감독 체계도 갖춰져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자는 약 285만 명에 이르지만 실제 종사자는 65만명, 약 20%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는 만성적인 돌봄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2026년부터 총 24개 '외국인 요양보호사 양성 대학'에서 외국인 대상으로 비자와 국가자격증 취득 기회를 제공한다.
돌봄 인력난 해소라는 정부의 고육지책이지만, 돌봄 현장에서 터무니없는 박봉에도 사명감을 갖고 묵묵히 일해온 요양보호사들이 어떻게 느낄지, 그리고 향후 외국인 요양보호사의 전문성과 안전성, 책임 체계가 어떻게 구축될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한편 간병인은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신체 활동과 일상생활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국가 자격이 없는 비제도권 인력으로 분류된다. 의료법상 직종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대부분 병원 소속이 아닌 개인 고용 형태로 일한다. 이 때문에 고용 계약의 불명확성, 업무 범위의 모호함, 과도한 노동 강도, 안전 문제 등이 상존한다.
현재 의료기관에서 간병은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월평균 250만 원 정도를 개인이 부담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간병 서비스의 건강보험 급여화를 단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간병인 중 외국인, 특히 조선족의 비율이 낮게는 40~50%, 많게는 90%에 이른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이 수치들이 공식 통계가 아니라는 데 있다. 돌봄 정책을 설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기초 데이터인데, 정작 간병인을 포함한 전체 인력의 규모·출신·고용 형태조차 명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돌봄의 본질은 'care'와 'cure'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cure(치료)는 질병을 고치는 것이 목적이다. 진단·수술·약물 등 의학적 개입이 중심이며, 문제 해결 중심의 접근이다. 반면 care(돌봄)는 질병의 유무를 넘어 인간의 삶 전체를 지킨다.
신체·심리·사회적 필요를 관찰하고, 관계를 형성하며, 정서적 안정과 삶의 존엄을 보호하는 과정이 care의 핵심이다. 돌봄이 단순한 '생활 보조'나 '손발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돌봄은 대상자의 변화를 읽고 위험을 예측하며 전문 지식에 근거해 개입해야 하는 엄연한 전문 영역이다.
2008년부터 시작된 장기요양보험에서는 방문요양·방문목욕·방문간호·주야간 보호·복지용구 등 다섯 가지 재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방문요양의 경우 돌봄 전문가인 요양보호사에게 잡다한 집안일까지 요구하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요양보호사가 고유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을 떠맡을 때 발생하는 위험과 심리적 부담은 결국 돌봄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내년 전국에서 시행되는 지역사회 돌봄통합 제도에서는, 소중한 돌봄 자원인 요양보호사와 간병인이 적재적소에서 사회적 존중과 자긍심을 갖고 돌봄전문가로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요양보호사와 간병인의 역할을 분명히 구분하고, 각 직군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협업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간병인을 비제도권 노동자로 방치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일정한 교육·자격·표준을 갖춘 제도권 돌봄 인력으로 편입시키는 일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래야 돌봄의 질이 향상되고, 종사자의 권익이 보호되며, 이용자의 안전 또한 안정적으로 확보될 것이다. 특히 돌봄전문가로서의 요양보호사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양질의 돌봄 서비스에 걸맞은 정당한 경제적 보상은 돌봄체계 개편의 최우선 과제로 고려돼야 한다.
돌봄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다. 누군가의 생명과 마지막 시간을 지켜내는 일이다. 돌봄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것,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은 보상체계를 갖추는 것—이것이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돌봄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전문 영역으로 받아들여질 때, 비로소 한국의 돌봄은 국민들의 노후의 삶을 지키는 진정한 사회복지 시스템으로 거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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