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사고배상 보험료 최대 88% 지원…의사들 "전향적 태도 감사"(종합)

복지부 배상보험료 지원사업 시행…전문의 15억·전공의 3억 보장
산부인과의사회 "환영…법적 제도화·형사처벌 특례 병행도 필요"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2025.9.1/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정부가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이 의료사고를 냈을 경우 배상보험료를 최대 88%까지 지원한다. 의료진으로선 연 20만 원의 보험료로 15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에 대비할 수 있게 된다. 현실을 엄중히 인식하고 국가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태도에 의료계도 크게 환영했다.

다음달 12일까지 가입 신청 가능…보험사업자는 현대해상

보건복지부는 26일 '필수의료 의료진 배상보험료 지원 사업'을 본격 시작해 이날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지원 대상 의료진의 소속 의료기관이 배상보험 가입 신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보험사 공모와 선정위원회 평가를 거쳐 현대해상화재보험을 보험사업자로 선정했다.

보험료는 필수의료 분야 전문의와 전공의에게 지원된다. 우선 전문의는 분만 실적이 있는 병의원 산부인과 전문의와 병원급 소아외과·소아흉부외과·소아심장과·소아신경외과 전문의가 지원 대상이다.

전문의 의료사고 배상액 중 2억 원까지는 의료기관이 부담하고, 2억 원을 초과한 15억 원까지 배상액에 대해 보험사가 부담한다. 보험료는 전문의 1인당 연 170만 원으로 그중 정부가 150만 원을 지원해 의료기관에서는 연 20만 원만 내면 된다.

전공의는 수련병원에 근무 중인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심장혈관흉부외과·응급의학과·신경외과·신경과 소속 레지던트가 지원 대상이다. 의료사고 배상액 중 3000만 원까지는 수련병원이 부담하고, 3000만 원을 초과한 3억 원까지 배상액에 대해 보험사가 보장한다.

보험료는 전공의 1인당 연 42만 원이며 그중 정부가 25만 원, 병원이 17만 원을 각각 부담한다. 수련병원은 기존에 가입한 배상보험이 있을 경우, 보험료 지원과 같은 금액인 전공의 1인 기준 25만 원의 환급을 선택할 수도 있다.

복지부는 막대한 의료사고 손해배상금 부담을 의료진의 필수의료 기피 원인 중 하나로 보고 대책을 추진해 왔다. 그동안 민간 보험사나 공제조합이 운영하는 의료배상 책임 보험이 있었지만, 가입률이 높지 않았고 보장 한도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보험료 지원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필수의료 분야 종사자의 배상 부담을 완화하고 환자의 신속한 피해 복구를 돕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이날 "많은 의료기관이 배상보험에 가입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들 "선의의 의료행위에 형사 처벌 부당…특례법 필요"

이번 정책에 대해 의료계도 환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날 "붕괴 직전의 필수의료 현실을 엄중히 인식하고 국가 책임을 강화하려는 정부의 전향적 태도에 감사드린다"며 회원들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유도하겠다고 전했다.

산부인과의사회는 "과거 의료사고의 책임을 온전히 개별 의료기관과 의사 개인에게 전가해왔던 '자력 구제' 방식에서, 국가가 위험을 분담하는 '사회적 안전망' 구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했다.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하지만 전액 국가배상제가 아닌 '보험료 지원' 형태인 점과 2억 원의 자기부담금이 여전히 존재한 데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1년 단연도 사업이 아닌 법률에 따른 제도화를 요구하기도 했다.

의사회는 "'보험이 있어도 망할 수 있다'는 공포가 존재하는 한 인프라는 되살아나지 않는다"면서 "자기부담금 2억 원은 대형병원(상급종합병원)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일 수 있으나, 저출산과 저수가로 경영난에 허덕이는 지방 소규모 분만의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사고 소송은 통상 4∼5년 이상 소요되는데, 예산 사정에 따라 지원이 중단된다면 고액의 보험료와 배상 책임은 다시 의사 개인의 몫이 된다"며 "단순한 '시범사업'에 그치지 않도록, 필수의료 지원을 법률에 명시해 국가의 영구적인 책무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요청했다.

특히 의사회는 "의료계가 겪고 있는 가장 큰 고통은 민사상 배상이 아니라, 선의의 의료행위 결과에 대해 형사 처벌을 가하는 과도한 사법 관행"이라며 "배상금이 해결된다 해도, 의사가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입건돼 수년간 수사와 재판을 받는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국회는 돈으로 막을 수 없는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의 조속한 제정을 통해 의사들이 감옥 갈 걱정 없이 오직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