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사 수급추계, AI 대신 '정책 변수' 중심 전환…보험유형도 반영

의료이용량 매년 0.88% 증가 반영…AI 생산성 변수는 '0% 고려'
연내 통합 시뮬레이션 완성 예정…12월 시나리오 검증 착수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김태현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 회장 및 위원 등이 12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T타워에서 열린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 제1차 회의를 준비하고 있다. 2025.8.12/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의사인력을 추계하는 위원회 위원들이 의사 인력 수요를 예측할 때 기술 생산성보다 정책과 제도 변화를 중심에 두기로 했다. 인공지능(AI)을 통한 효율성 향상은 단기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판단 아래, 의료이용량이 매년 0.88%씩 증가하는 추세로 반영하고 보장률·보험제도 등 정책 변수를 새롭게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30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는 최근 제6차 회의를 열고 의료이용량 증가율, 정책 변수, 보험유형별 이용량, 근무형태, 지역별 수급 격차 중심 추계모형의 주요 변수와 적용 범위를 조정했다.

위원회는 이번 회의에서 '정책 변수(Policy Elasticity)' 항목을 공식 안건으로 상정했다. 의료 수요가 기술보다 정책 변화에 민감하게 움직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위원회는 의료이용량 변화를 이끄는 주요 요인으로 보장률·본인부담률 조정, 실손보험 구조 개편, 의료급여 제도 변화를 제시했다.

한 관계자는 "의료이용량의 증감은 기술보다 제도 변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실손보험, 보장률, 본인부담률 조정 등은 의료 수요를 직접적으로 늘리거나 줄이는 변수"라고 밝혔다.

이번 변화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의 국정감사 발언과 방향성이 맞닿아 있다. 정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료환경 변화와 의료정책 방향성이 반영돼야 정확한 인력 추계가 가능하다"며 "지역·필수의료 대책 등 정책 요소를 추계 과정에서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구체적으로 이번 회의에서 위원들은 의료서비스 수요를 '의료이용량=입원일수+α×외래일수'로 정의했다. 국민 1인당 진료 횟수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연도별 증가율(0.88%)을 적용하기로 했다. 1인당 의료이용량은 지난 2013년 28.1일에서 2023년 30.7일로 9.2% 증가했다. 위원회는 인구 감소 상황에서도 진료 수요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수요 추계의 정확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보험유형별 이용량도 새로 반영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건강보험 중심으로 의료 수요를 계산했지만, 앞으로는 의료급여·산재보험·자동차보험 등 비(非)건강보험 영역까지 포함한다. 그동안 비건보 영역은 통계 접근성이 낮아 전체 의료이용량에서 제외됐지만, 실제 비중은 전체의 6~8%로 의료 수요를 과소평가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자동차보험 진료비는 지난해 기준 약 2조 5000억 원, 산재보험 진료비는 1조 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위원회는 이 두 영역을 포함하면 건강보험 통계보다 진료행태를 더 폭넓게 설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산재, 자동차보험 환자는 재활이나 장기 치료가 많아 의료이용 구조가 일반 환자와 다르다"며 "이 영역을 포함하면 정책 변화에 따른 의료이용의 탄력성을 더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또한 건강보험공단, 심평원, 근로복지공단의 2022~2024년 데이터를 추가 확보해 통합 분석할 계획이다.

의료기관 종별 진료량 격차도 보정된다.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은 외래 진료가 빠르게 늘고 있고, 요양병원, 의원급은 증가세가 둔화했다. 위원회는 기관별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해 진료량을 보정하기로 했다. 입원과 외래의 비율은 과거 3:1에서 최근 2.5배 수준으로 좁혀졌다. 2023년 기준 외래 1회 평균 진료비는 4만 2000원, 입원 1일당 진료비는 10만 원으로 과거 3배 격차가 2.4배로 줄었다. 즉 진료비를 기준으로 의료자원 투입을 계산하겠다는 구상이다.

위원회는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문제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이날 일부 위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지역 의사는 전체의 절반이 넘는 55%가량을 차지했고, 강원·충북·전북·경북 등 지방권은 지역별 의사 비중이 2~3%에 그쳤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연령·성별·지역별 진료량을 보정해 지역 격차를 완화하는 모형을 적용하고, 향후 광역 단위로 교정계수를 추가해 정확도를 높이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의료기관별·보험유형별·근무형태별 데이터를 통합해 연내 의사 수요 추계 모형을 완성하기로 결정했다. 위원회는 12월 말에는 추계 모형을 검증하고 시나리오를 검증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복지부는 해당 논의를 의사 수요 추계모델을 확정하고, 이를 의대 정원 재조정의 근거로 활용할 방침이다.

rn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