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지만 다른 '보건'과 '복지'의 통합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두 단어가 있다. 바로 '보건'(保健)과 '복지'(福祉)다. 의료기관이나 보건소 혹은 노인종합복지관이나 사회복지센터 같은 기관 이름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고, 정부 정책에도 반드시 따라붙는 용어다. 하지만 막상 두 개념의 차이를 명확히 설명하라 하면 많은 이들이 선뜻 답하지 못한다.
'보건'은 전염병 예방, 환경위생 관리, 영유아·산모 건강관리, 치매 관리와 같이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체계를 중심에 둔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즉 보건은 질병 발생 자체를 최소화하려는 예방관리 서비스인 반면 의료는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서비스이다. 최근에는 만성질환 관리, 정신건강 증진, 디지털 헬스를 활용한 생활습관 개선 등이 보건의 확장된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복지'는 보다 포괄적이다. 소득, 주거, 교육, 돌봄, 고용 등 삶의 전 영역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동수당, 장애인 활동 지원, 노인 요양서비스, 긴급생계비 지원 등이 모두 복지의 범주에 속한다. 즉 건강만이 아니라 삶의 질 전반을 지탱하는 사회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복지의 초점은 개인이 자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삶의 위험 요소에 대응하는 데 있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소득 상실, 고령으로 인한 돌봄 필요, 아동·청소년의 발달 지원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복지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내년 3월부터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 이른바 '돌봄통합지원법'이 시행된다. 고령자와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건강하게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의료·요양·복지 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제공된다.
현재도 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비롯해 보건소, 주민센터, 복지관 그리고 읍·면·동 단위의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이 주민의 건강관리와 생활 지원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찾아가는 보건복지팀은 기초생활수급자, 독거 고령자, 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발굴해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방문 건강관리, 의료 연계, 긴급지원, 돌봄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전국 3553개 읍·면·동 중 3461개소에 설치돼 있으며, 총 1만 4000여 명의 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는 읍·면·동 보건복지팀뿐 아니라 국민건강보험공단, 사회서비스원 등 전문기관과 연계해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 계획을 수립하고, 신설되는 통합돌봄 지원회의와 협의체를 통해 다학제적 의사결정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 대상자를 어떻게 발굴하고, 기존 서비스와 맞춤형 돌봄을 어떻게 조율해 사람 중심의 의료·요양·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뚜렷하지 않다.
현장에서 느끼는바, 이동이 자유롭지 않은 대상자를 위해 이동 통합진료 차량 같은 물리적 통합 장치부터 마련됐으면 한다. 또한 수원 세 모녀 사건, 송파 세 모녀 사건, 관악구 탈북 모자 사건처럼 소득 기준과 서류 요건, 정보 부족, 제도 간 칸막이로 인해 발생한 복지 사각지대는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새로 구성될 통합지원협의체가 읍·면·동 보건복지팀과 관련 기관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통합지원정보시스템을 통해 신청·발굴, 지원계획 수립, 서비스 이력 관리까지 아우른다면 비로소 디지털 통합돌봄 서비스가 완성돼 빠짐없는 대상자 발굴과 촘촘한 안전망 구축이 가능해질 것이다.
보건과 복지는 최소한의 건강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공적 서비스다. 보건은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 복지는 위험으로부터의 보호와 생활 보장이다. 이 차이를 분명히 이해할 때 우리는 두 축을 어떻게 조화롭게 설계해야 할지 더 선명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초고령 사회를 맞는 한국의 과제는 분명하다. 보건과 복지를 단순히 병렬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결해 국민의 전 생애를 지탱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드는 것이다. 건강한 사회와 존엄한 삶, 이 두 가지 모두를 지켜내는 길이 바로 보건과 복지의 통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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