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권영희 약사회장 "성분명 처방 도입해 국민안전·재정 지켜야"

환자 안전 지키고 알 권리 보장…재정 절감 효과도
제약사별 효과 차이?…권 회장 "과학적 근거 없는 주장"

권영희 대한약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5.9.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대한약사회가 '성분명 처방'의 제도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성분명 처방은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을 기준으로 의사가 약을 처방하고 약사가 조제하는 방식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환자 안전과 합리적 의약품 사용을 위해 권고하는 제도지만 한국은 상품명 위주 처방이 일반적이다.

권영희 대한약사회장은 지난달 29일 뉴스1과 인터뷰에서 "성분명 처방은 약사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국민 안전과 건강보험 재정을 지키는 제도이며 국민이 직접 요구해야 할 권리"라며 "정부와 국회가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될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환자 안전 지키고 알 권리 보장…재정 절감 효과도

권 회장은 성분명 처방의 필요성으로 우선 환자 안전과 알 권리를 꼽았다. 그는 "현재는 환자가 내가 먹는 약이 무엇인지 몰라 치명적 알레르기가 있거나 중복으로 처방돼도 인지하지 못한다"며 "상품명만 알고 성분명을 몰라 해외에서 급하게 약이 필요할 때 구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항경련제 '프로막'(발프로산) 대신 이름이 비슷한 위점막 보호제 '프로맥'(폴라프레징크)이 조제돼 환자가 교통사고로 이어진 사례, '잔탁'(성분명 라니티딘)에 알레르기가 있던 환자에게 동일 성분의 다른 상품명 '큐란'(성분명 라니티딘)이 투여돼 식물인간 상태에 이른 사례를 대표적으로 꼽았다.

그는 "성분명으로만 표기됐다면 이런 치명적 사고는 막을 수 있었다"며 "WHO가 환자 안전을 위해 성분명 처방을 권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유는 재정 절감이다. 권 회장은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은 동일 성분임에도 가격 차이가 5배까지 난다. 치매 치료제 도네페질만 해도 상품에 따라 최저가 544원, 최고가 2460원"이라며 "성분명인 도네페질로 처방이 됐다면 소비가자 선택할 수 있지만 2460원짜리 제품을 처방했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이 새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 회장은 성분명 처방을 도입할 경우 최대 연간 7조 9000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고, 약화사고 감소·불필요한 약 처방 억제 등 사회경제적 효과까지 포함하면 9조 원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의약품정책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권 회장은 "국민이 낸 보험료가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성분명 처방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권영희 대한약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5.9.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제약사별 효과 차이?…권 회장 "과학적 근거 없는 주장"

권 회장은 의료계가 '동일 성분이라도 제약사별 효과·부작용 차이가 있다'며 성분명 처방을 반대하는 것을 두고선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그는 "식약처는 WHO·FDA·EMA와 같은 국제 기준으로 생물학적 동등성을 검증한다"며 "동등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제네릭 허가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동일 성분의 약을 해당 제약사에서 각기 제조하는 게 아니라 제조만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서 묶음 제조하기 때문에 같은 약으로 볼 수밖에 없다"며 "만드는 과정도 같고 같은 곳에서 생산되지만, 이름과 외형만 다르기 때문에 제약사별로 효과나 부작용이 다르다는 것은 억지"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의약분업 취지는 처방·조제를 분리해 환자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다. 성분명 처방은 이를 더 투명하게 만들고 리베이트를 줄이며, 약사의 복약지도 역할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성분명 처방으로 제약사의 리베이트 대상이 의사에서 약사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에 관해선 "약사는 환자의 선택을 도와주는 역할일 뿐"이라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엄격한 기준으로 제품을 선별하고, 해당 기준에 따라 환자들이 의약품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면 된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스웨덴처럼 정부 입찰, 우선약제 목록을 정하고 약사는 이를 환자에게 안내하는 모델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권영희 대한약사회 회장이 29일 서울 용산구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갖고 있다. 2025.9.29/뉴스1 ⓒ News1 이호윤 기자
수급 불안정 약부터 단계적 도입…전문약 전체로 확대 목표

현재 국회에는 수급 불안정 의약품에만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 권 회장은 "코로나19 이후 의약품 품절이 만성화돼 있다. 당뇨약, 인슐린까지 품절 사태가 확산하는 상황"이라며 "우선 수급 불안정 약부터 시행하면 환자가 약을 끊지 않고 대체제를 안정적으로 복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모든 전문약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다만 권 회장은 "항간질제나 항응고제처럼 치료역폭이 좁은 약은 예외 규정을 둘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권 회장은 성분명 처방 외에도 약사 직능을 활용한 만성질환 관리와 약료서비스 강화를 임기 내 과제로 꼽았다. 그는 "약사가 다제약물 관리와 부작용 보고를 통해 지역 주민 건강관리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며 "국민이 약사를 더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권영희 대한약사회 회장 프로필

△1959년생 △서울여고 △숙명여대 약학과 졸업 △숙명여대 임상약학 석사 △서초구약사회 회장 △서울시의회 의원 △서울시약사회 회장 △대한약사회 회장

kuko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