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노화, 집 근처 공원도 답이다! [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흔히 '병이 없는 상태'를 건강이라고 생각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정신·사회적 안녕을 모두 포함한다고 정의한다. 이를 결정하는 중요 요인들은 생활환경, 사회적 관계, 생활습관 그리고 유전적 소인이다.

유전적 소인은 쉽게 바꿀 수 없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개인의 선택과 꾸준한 실천, 사회적 지원을 통해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건강한 생활습관과 마음관리 습관은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부모로부터 질병에 대한 유전적 소인을 물려받는 경우가 있지만, 건강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인은 유전이 아니라 생활습관과 마음가짐이다. 같은 유전적 조건을 지닌 사람이라도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스트레스 관리 여부에 따라 발병 시기와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론 건강을 지키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도 존재한다. 저소득 지역이나 도시 내 저개발 구역 주민들은 대기오염, 소음, 열악한 주거 환경에 더 많이 노출돼 만성질환과 정신건강 문제 발생 위험이 높다. 이러한 격차는 기대수명 차이로 이어지며 사회적 건강불평등을 심화한다. 결국 건강불평등 문제는 개인의 생활습관 개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고, 환경 개선과 공공 인프라 확충 같은 사회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매력가든·동행가든 프로젝트'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2026년까지 1007개소의 정원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2024년 한 해 동안만도 광진구를 포함해 536개, 42만㎡ 규모의 정원이 새롭게 조성됐다.

공원은 단순한 경관을 넘어 시민의 건강을 지탱하는 중요한 자원이다. 햇볕을 쬐며 걷는 활동은 면역력과 뼈건강을 강화하고 고혈압, 당뇨병 같은 생활습관병 예방에 기여한다. 또한 공원은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완화하고 정서적 안정을 제공하며, 이웃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는 사회적 고립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고령자에게는 인지기능 유지와 삶의 질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공원과 같은 건강 자원은 유전적 한계를 넘어 누구나 보다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 해법이 될 수 있다.

노년에 가장 두려운 것은 고립과 외로움이다. 자녀와의 교류가 줄고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 삶의 만족도는 빠르게 떨어진다. 그러나 공원은 이웃과 자연스러운 만남을 가능하게 하고, 새로운 사회적 연결망을 만들어 준다. '마더 네이처'(Mother Nature)가 주는 치유 효과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자연과 연결될 때 경험하는 회복의 힘을 뜻한다.

숲의 향기와 바람, 흙과 물의 촉감은 뇌의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춘다. 햇볕을 받으며 걷는 단순한 활동만으로도 우울감 완화, 수면 개선, 심뇌혈관 건강에 도움을 준다. 공원 안의 정원들은 고령자에게 부작용 없는 심신 치유의 도구이자 사회적 관계를 이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공원처방(Park 또는 Garden Prescription)은 공중보건 관점에서 도시의 자연환경을 활용한 예방적 건강관리법이다. 특히 정신적 스트레스, 고혈압, 혈당, 우울증 등을 완화하는 효과가 좋다. 미국의 'Park Rx America'는 의사가 환자에게 정원이나 공원에서 일정 시간을 보내도록 처방을 내리는 대표적 사례이며, 영국 역시 '사회처방'(social prescribing)의 하나로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시와 산림청을 중심으로 도시형 정원과 결합해 생활공간에서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원 기반 건강증진사업들이 추진되고 있다. 공원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예방 중심의 건강 생태계로 확장될 수 있다.

노인복지 시설 근처에 사는 고령자는 보건·의료·돌봄 서비스를 손쉽게 이용할 수 있어 사회적 고립을 예방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많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를 탓하기보다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건강한 생활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출발점은 멀리 있지 않다. 집 근처의 공원을 틈틈이 거닐며 잡초를 뽑고, 이웃과 대화를 나누며, 햇볕을 쬐고 산책하는 일상이야말로 성공노화의 가성비 높은 방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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