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다 숨지는 일 없게, 신약 '240일 허가' 시대 여는 식약처

[식약처 사람들] 세계최고 수준·최단 속도 허가·심사 돌입
환자단체 "생명 연장, 완치 기회 얻을 수 있는 시간" 환영

편집자주 ...올해 출범 12주년을 맞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 안심이 기준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에 국제적 규제 기관으로 발돋움한다는 구상이다. 산업 육성과 국민 안전,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내놓은 약속이 최근 수년 새 수백 건에 달한다. 이들이 내놓는 규제는 두 마리 토끼를 넘어 '최초, 혁신'까지 세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국민 질문에 답하고 있는 식약처를 <뉴스1>이 들여다본다.

의료제품 허가·심사 혁신방안 주요내용.(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암이나 희귀질환자에게 몇 달은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시간이자 완치 기회를 얻을 수도 있는 시간입니다. 안전성과 효과를 보다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빨리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감사드립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25년 전 백혈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아내가 신약 '글리벡' 덕에 생명을 건졌다는 안 대표의 말은 식약처의 '의료제품 허가·심사 혁신' 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치료제가 이미 개발됐는데도 허가·심사가 길어지며 환자들이 치료 기회를 놓치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신약 등의 허가 체계를 전면 개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240일 내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제한된 인력이 차례대로 자료를 검토하던 방식을 버리고 다수 인력이 동시에 심사하는 한편, 사전 대면 회의를 도입해 허가 시스템을 '규제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398~420일 걸리던 의료제품 허가·심사, 240일로 단축

1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식약처 '의료제품 허가·심사 혁신 방안'의 핵심은 허가 기간 단축을 넘어 철저한 검증을 기반으로 빠르면서도 예측 가능한 허가·심사 규제 서비스를 확립한다는 데 있다.

그동안 제한된 인력이 방대한 허가·심사 자료를 차례로 검토했다. 심사가 오래 걸렸고 업체로서도 허가 접수 후 수개월이 지난 뒤 보완 요청을 한꺼번에 받아 다시 자료를 준비해야 했다. 자료가 조금만 미비해도 허가가 수개월씩 지연되기 일쑤였다.

국내 신약 허가 기간은 2023년 기준 평균 420일, 바이오시밀러는 3년(2022~2024년) 평균 406일, 신기술 의료기기는 398일(2024년 기준) 걸렸다. 식약처는 앞으로 240일 내 허가·심사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심사 체계를 크게 바꾼다. 안전성·유효성·품질·임상·통계 등 심사 항목별 전담팀이 동시에 자료를 검토한다. 각 전담팀은 자료 접수 25일 차부터 분야별 1차 검토 의견을 수시로 제공한다. 종전 60여 일이 지나서야 보완을 요청했던 데 비해 업무 처리가 빨라졌다.

(신약) 동시·병렬심사 체계.(식품의약품안전처 제공)

이와 함께 식약처는 허가 신청 전 대면 회의를 도입해 업체와 두 차례 이상 사전 회의를 열기로 했다. 기업이 자료를 제출하기 전에 부족한 부분과 지연 가능성을 점검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허가 신청을 할 때 자주 누락되는 항목과 보완이 필요한 내용을 정리한 문서도 제공한다.

속도 높이되 꼼꼼히 평가…향후 AI도 활용해 업무 보조

이런 변화가 가능한 데에는 대규모 인력 확충이 꼽힌다. 종전 식약처 허가·심사 인력은 369명이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9049명), 유럽의약품청(EMA·약 4000명), 일본의약품의료기기종합기구(PMDA·635명) 대비 상당히 적은 규모다.

그런데도 국내 신약 허가 건수는 연간 33건으로 주요국과 큰 차이는 없었다. FDA는 연간 49건, EMA는 44건, PMDA은 45건이다. 1건당 40명이 투입되는 FDA, 20명이 투입되는 EMA보다 적은 인력(1건당 3~5명)으로 많은 업무를 처리해 온 셈이다.

식약처는 올해 195명을 신규 채용해 전체 심사 인력을 564명으로 늘렸고, 상당수를 안전성 검토에 투입했다. 허가 속도를 높이되 꼼꼼히 평가하는 구조로 고도화했다. 앞으로 인공지능(AI) 허가·심사 보조 시스템을 도입하고 추후 임상시험 승인(IND) 절차도 개선할 방침이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료제품 허가·심사혁신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5.26 ⓒ 뉴스1 김성진 기자

이로써 바이오헬스 산업의 발전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개발 신약은 지난 1999년 항암제 '선플라주' 이후 올 4월까지 총 43개로 늘었다. 신기술 의료기기 등 혁신적인 의료제품의 개발·상용화도 급증하고 있다.

식약처 전신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청장을 지냈던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3위, 3200개 이상의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다.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 시점에서 허가 속도는 단순 행정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력 그 자체"라고 전했다.

노 회장은 "이번 방안 시행이 우리 제약산업 발전의 새 계기가 될 것"이라면서 "업계에서도 허가신청 자료의 수준을 높이고 식약처와 유기적으로 소통해 혁신 방안이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부연했다.

환자단체들도 이번 조치가 치료 접근성을 높일 계기라고 보고 환영했다. 안기종 대표는 "이미 개발된 치료제를 하루빨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혁신"이라며 "이번 제도는 지난 20년간 식약처 관련 정책 중 가장 혁신적"이라고 호평했다.

신약, 바이오시밀러, 신기술 의료기기의 허가 신청 전 대면 회의는 공문 또는 전자민원 시스템을 통해 식약처 각 허가부서에 신청하면 된다. 식약처는 이번 방안을 업계 등에 상세히 안내하기 위해 분야별 민원 설명회를 진행했으며 식약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 볼 수 있다.

ks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