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인하 칼바람 생존열쇠 'R&D·수출'…"양극화 심화할 것"

복제약 약가 칼질…중소 제약사 수익성 '경고등'
"신약·바이오시밀러 확보 여부가 기업가치 가를 것"

유한양행이 개발한 3세대 폐암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유한양행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2026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급격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약품 수요 증가라는 호재와 약가 제도 개편에 따른 수익성 저하라는 악재가 공존하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한국신용평가는 내년 제약바이오산업 전망을 '중립적'(Neutral),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으로 제시했다.

의약품 시장의 외형 성장은 지속되겠지만, 복제약(제네릭) 중심 사업 구조를 가진 제약사들이 약가 제도 개편 등 정책 영향으로 이익 창출력이 훼손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약가 인하 개편안 추진…중소제약사 수익성 악화 우려

30일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제약바이오 업계의 화두는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약가 제도 개편안이다. 이번 개편안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와 신약개발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추진된다. 핵심은 복제약 약 가격의 대폭 인하다.

기존에는 특허 만료 후 등재되는 복제약 의약품의 가격이 오리지널 약가의 53.55% 수준으로 책정됐다. 새 제도가 내년 7월께 실행될 시 이 산정률은 40%대로 낮아진다. 1년간 59.5% 수준을 인정하는 기존 '복제약 최초 등재에 따른 약가 가산 제도'는 폐지된다.

약가 정책 개편 시 '계단식 약가 인하' 제도가 강화되면서 복제약 난립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개편안에 따르면 등재 순서 10번째 복제약까지는 기준 가격을 적용받지만, 11번째부터는 최저가의 85% 수준으로 가격이 낮아진다.

이러한 조치는 신규 등재 품목뿐만 아니라, 이미 등재된 약제에도 적용된다. 기등재 의약품은 2026년부터 2029년까지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약가가 조정될 예정이다.

김수민 한신평 수석애널리스트는 "이번 제도 개편은 복제약 의존도가 높은 중소형 제약사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면서 "복제약 개발에 따른 기대 이익이 감소함에 따라 제약사들이 단순 복제약 생산보다는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한 차별화를 강요받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SK바이오팜 연구원이 물질 분석을 하고 있다.(SK바이오팜 제공)/뉴스1
R&D 성과·글로벌 수출, 실적 '양극화' 가른다

약가 인하라는 우려 속에서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생존 전략은 '제품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해외 시장 진출'이 제시됐다. 한신평은 수출 의약품, 개량신약, 바이오시밀러 등 약가 인하 대상에서 제외되거나 시장성이 높은 제품군을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기업 간 실적 격차가 벌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의 성과가 핵심 변수다. 미국 시장은 약가가 국내 대비 평균 3배 이상 높아 수익성 확보에 유리하다는 평가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 셀트리온의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 등과 휴온스의 국소마취제 '리도카인 주사제' 등이 미국 시장에 진출해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 올릭스, 알테오젠 등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글로벌 제약사와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면서 R&D 역량을 입증했다. 한신평은 이러한 자체 신약개발·기술이전 성과를 확보하는 상위 제약바이오기업은 안정적인 외형 성장과 수익성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는 변수로 꼽힌다.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생물보안법 등을 통해 약가 인하 압력을 높이고 있다.

한신평은 "미국 약가의 프리미엄이 과거 대비 감소할 수 있으나,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국산 바이오시밀러 업체들에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제약바이오 신용도, 대형사 '맑음'·중소형사 '흐림'

2026년 제약업계의 신용 등급 전망은 대체로 안정적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우수한 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신용등급이 'AA-/긍정적'에서 'AA/안정적'으로 상향 조정됐다. 한미약품, 녹십자홀딩스, 동아에스티 등 주요 상위 제약사들 역시 안정적인 등급을 유지했다.

다만 한신평은 R&D 투자가 필수적인 생존 조건이 된 만큼 이에 따른 재무 부담 관리가 중요해졌다고 봤다.

한신평은 "안정적인 영업현금창출력을 보유한 대형사들은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지만, 현금 창출력이 부족한 일부 기업들은 R&D 비용 충당 과정에서 재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2026년 새 약가 제도가 시행될 시 복제약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에 시련의 시기가 올 것"이라면서 "R&D 여력이 있는 기업은 버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투자와 고용 등에서 위축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약가 인하 리스크를 상쇄할 수 있는 자체 R&D 성과 확보와 글로벌 시장 진출 여부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