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40%로 내릴땐 3.6조 피해"…비대위, 약가 개편에 배수진[일문일답]
원료의약품 자급률 저하 우려…'역차별' 공급망 붕괴 초읽기
약가 개편안 전면 재검토 촉구…"선순환 구조 이해 필요"
- 황진중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 등을 명분으로 대규모 약가 인하를 예고한 후 제약바이오 업계가 "산업의 존폐가 걸린 문제"라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2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제약바이오협회 대강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약가 개편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기자회견에는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비대위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윤웅섭 이사장(비대위 공동위원장·일동제약 대표), 조용준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비대위 부위원장·동구바이오제약 대표), 김영주 비대위 기획정책위원장(종근당 대표), 윤성태 비대위원(휴온스그룹 회장), 박재현 비대위원(한미약품 대표) 등 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번 정책이 단순히 제약사의 이익 감소를 넘어 국내 의약품 공급망 붕괴와 제약 주권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음을 우려했다.
다음은 비대위 관계자들과의 일문일답.
-정부가 올 1분기부터 이번 안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산업계와 충분한 소통이 없었나.
▶(노연홍) 그동안 정부와 여러 협의체를 운영하며 대화를 해왔다. 하지만 이는 사후관리 차원의 미시적인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였지, 지금처럼 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대폭적인 약가 인하에 대한 총괄적 협의는 전무했다. 지난달 기자단 설명회 직전에야 관련 내용을 공유받았다. 이는 통보에 가까운 부분적인 의견 청취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2월 28일까지 의견을 수렴해 확정하겠다고 하지만, 과거 전례를 볼 때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매우 크다.
-약가 인하가 원료의약품 자급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지적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인가.
▶(노연홍) 글로벌 공급망이 살아있을 땐 수입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지금처럼 공급망이 위축된 상황에선 치명적이다. 우리는 이미 '요소수 사태'를 통해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을 때 산업 전반이 마비되는 것을 경험했다. 정부가 국산 원료 사용 시 약가 우대 기간을 '1년'에서 '5+5년'으로 늘려주겠다고 했지만, 실제 적용받는 사례가 전무하다. 완제의약품 약가 우대만으로는 값싼 해외 원료를 대체할 유인이 부족하므로, 원료 생산 기업에 직접 인센티브를 주는 등 더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
▶(조용준) 약가 인하로 제약사의 영업이익률이 떨어지면, 기업은 생존을 위해 원가 절감에 나설 수밖에 없다. 결국 가격이 싼 중국산이나 인도산 원료를 찾게 되고, 국산 원료 사용은 줄어들 것이다. 이미 인도산 원료 수입 비중이 2위로 올라서는 등 저가 원료 의존도가 심화되고 있다.
-정부는 재정 절감 효과를 1조 원으로 추산했지만, 업계는 3조 6000억 원의 피해를 주장한다. 차이가 큰 이유는 무엇인가.
▶(노연홍) 정부가 발표한 1조 원은 기존에 등재된 의약품 중 약가가 높게 형성된 품목들을 우선적으로 인하했을 때의 수치다. 하지만 비대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체적인 파급력을 분석했다. 정부 안대로라면 신규 등재 의약품 가격은 현행 53.55%에서 40% 수준으로 떨어진다. 여기에 '주기적인 약가 인하'가 작동하면 기존 의약품들도 결국 40%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될 수밖에 없다. 현재 건강보험 약품비 26조 원 중 국산 전문약 비중 등을 고려해, 전체의 약 25%가 증발한다고 가정했을 때 3조 6000억 원이라는 피해 규모가 산출된다.
▶(조용준) 중소 제약사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현재 중소·중견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5% 이하다. 여기서 약가가 40% 인하되면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 결국 수익성이 낮은 품목부터 생산을 중단하게 될 것이고, 이는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제약사들이 연구개발(R&D)보다는 복제약(제네릭) 수익에만 안주한다는 비판도 있다. 지금을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윤웅섭) 제약산업의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국내 제약사는 대형사든 중소형사든 복제약 판매 수익을 기반으로 R&D와 설비 투자를 진행하는 '선순환 구조'를 가지고 있다. R&D 자금줄인 복제약 수익이 막히면 미래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은 41개의 신약 개발, 3000개 이상의 파이프라인 보유하는 등 글로벌 도약의 임계점에 와 있다. 이 시점에 정부가 마중물 대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선진 제약 강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는 격이다.
▶(김영주) 바이오 벤처는 투자 유치로 R&D를 하지만, 전통 제약사는 제품 판매 이익을 재투자한다. 약가 인하로 이익이 줄면 비용이 많이 드는 임상 2상, 3상을 진행할 체력이 고갈된다.
-리베이트 등 불법 행위에 대한 자정 노력은 충분했나. 이번 개편안이 다국적 제약사(외자사)에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시각도 있다.
▶(노연홍)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큰 노력을 해왔고 법적 처벌도 강화됐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리베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약가 인하라는 처방을 내리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꼴이 될 수 있다.
외자사와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개편안의 피해는 국내 산업계에 집중된다.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은 약가의 70%를 보장받지만, 국산 복제약은 가산 제도가 축소되거나 40% 수준으로 떨어진다.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에 따른 우대조차 상위 30%를 제외하면 실효성이 없어 국내 기업의 역차별이 우려된다.
-시장형 실거래가제 확대와 영업대행사(CSO) 관련 우려점은 무엇인가.
▶(김영주) 정부는 저가 구매 인센티브율을 현행보다 대폭 상향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병원과 약국은 수익 극대화를 위해 제약사에 과도한 저가 납품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심각한 시장 교란을 야기할 것이다. 이는 제약 산업 발전이나 R&D 재투자로는 이어지지 않는 반(反)산업적 정책이다.
-정부가 입장을 고수할 경우 '플랜 B'는 있나. 전면 재검토 외에 현실적인 대안은.
▶(노연홍) 현재로서는 전면 재검토 외에 다른 '플랜 B'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 2012년 일괄 약가 인하 당시에도 건강보험 재정 절감 효과는 단기적이었고,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국민 부담이 늘었다는 연세대 연구 결과도 있다. 정부가 산업계의 절박함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 합리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하기를 바란다. 산업계는 국가 발전과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면 정부와 협력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다.
-정부는 R&D 지원을 늘리겠다고 한다. 약가 인하의 불이익을 상쇄할 수 있지 않나.
▶(노연홍) 반도체 등 타 산업의 경우 정부 지원 비중이 40%에 이를 수 있지만 제약바이오 산업은 13% 수준에 불과하다. 정부 지원이 늘고 있다고는 하나 산업계가 체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약가 인하는 기업의 영업이익을 직접적으로 깎아 먹기 때문에 R&D 투자 여력을 즉각적으로 위축시킨다. 평균 영업이익률이 4.8%인 상황에서 약가가 25% 떨어지면 R&D는 고사하고 기업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번 정책이 경쟁력 없는 복제약 기업을 구조조정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옥석 가리기 효과가 있을까.
▶(노연홍) 복제약 난립의 근본 원인은 2011년 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위탁 생동을 대폭 허용한 데 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을 산업계에 전가해선 안 된다. 복제약은 단순한 복제약이 아니라 보건 안보와 직결되는 자산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감기약 등 필수 약품 수급을 책임진 것은 우리 제약사들이었다. 일본과 프랑스도 급격한 약가 인하 이후 수백 개 품목의 공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점은.
▶(노연홍) 이스라엘의 제약사 '테바'를 주목해야 한다. 테바는 적대적 국가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복제약을 기반으로 성장해 세계적인 기업이 됐고, 자국의 보건 안보를 지켜냈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복제약 산업을 단순히 구조조정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국민 건강을 지키는 안보 자산으로 평가해야 한다.
▶(조용준) 필리핀은 70년대 제약 강국이었으나 잘못된 정책으로 산업이 무너져 현재 의약품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제약 주권을 잃지 않도록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j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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