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가 개편, 미래 포기 선언"…제약바이오, 연 3.6조 피해·1.5만명 고용 대란

"R&D 동력 상실·의약품 제조 기반 붕괴 우려"
"실패한 과거 답습…원점 재검토 후 협의체 구성해야"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원이 기자회견에 앞서 발표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 2025. 12. 22/뉴스1 황진중 기자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정부가 추진 중인 새로운 약가제도 개편안에 대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가 "산업의 미래에 대한 포기 선언이자 보건 안보의 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업계는 이번 개편안이 강행될 시 연간 3조 6000억 원에 이르는 매출 손실과 약 1만 5000명의 대규모 실직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구체적인 피해 추산치를 내놓으며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 5개 단체로 구성된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2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 대강당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제약바이오 비대위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된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이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규정했다.

노연홍 비대위원장(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성명서를 통해 "단순한 재정 절감 수단이 아닌 산업 경쟁력을 지속시킬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개편안 시행을 유예하고 산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업이익률 4%대 불과…"연매출 3.6조 증발 시 R&D 전멸"

비대위 발표에 따르면 이번 개편안의 핵심 중 하나인 '실거래가 약가 인하'가 시작될 시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계는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국내 상위 100대 제약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4.8%, 순이익률은 3% 수준이다. 정부안대로 복제약(제네릭) 산정 비율이 기존 53.55%에서 40% 수준으로 조정되고, 주기적인 약가 인하가 겹치면 실제 인하율은 약 25.3%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비대위는 "지난해 전체 의약품 비용 26조 8000억 원 중 53% 수준인 복제약 비중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인하율을 적용하면 연간 최대 약 3조 6000억 원의 매출 증발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런 매출 감소는 기업 생존을 넘어 미래 성장 동력인 연구개발(R&D) 투자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상장 제약사 169곳의 평균 R&D 비중은 12.0%, 혁신형 제약기업은 13.4% 수준이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업 수익이 1% 감소할 때마다 R&D 활동이 1.5%씩 위축될 수 있다. 수익성 악화는 신약개발과 기술 수출 역량 상실로 이어진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비대위는 "지난 1999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된 약가 인하액만 약 63조 원에 이른다"면서 "이미 한계 상황에 놓인 제약바이오기업들에 이번 개편안은 5대 제약바이오 강국 도약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스스로 꺾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고용 쇼크·필수의약품 공급망 붕괴 '이중고'

비대위는 이번 약가 인하가 대규모 일자리 감축과 필수의약품 공급 부족이라는 사회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매출 10억 원당 고용유발계수가 4.11명이다. 반도체 1.6명이나 디스플레이 3.2명보다 높은 고용 창출 효과를 보인다. 비대위 시뮬레이션 결과, 약가 인하로 인한 매출 감소분을 고려할 시 약 1만 4800명의 인력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추산됐다.

제약바이오 산업 종사자의 94.7%가 정규직이고, 연구직의 69.2%가 석·박사급 고급 인력이라는 점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대거 소실될 수 있는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의약품 공급망 위기 역시 가시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국산 완제의약품 자급률은 2011년 80%대에서 지난해 69.0%까지 떨어졌다. 2020년부터 올해까지 채산성 악화로 항생제, 분만유도제, 신생아 호흡곤란 치료제 등 필수의약품 147건의 공급이 중단된 바 있다.

비대위는 "일본은 무리한 약가 인하로 복제약의 32.1%인 4064개 품목이 공급 부족, 중단되는 사태를 겪었다"면서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31.4%에 불과하고 페니실린 등 핵심 원료의 자급률이 0%인 상황에서 약가 인하는 해외 원료 의존도를 심화시켜 '제약 주권'을 위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연홍 비대위 공동위원장(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가운데)과 윤웅섭 비대위 공동위원장(한국제약바이오협회 이사장, 일동제약 대표)이 기자회견에 나서고 있다. 2025. 12. 22/뉴스1 황진중 기자
"초저가 낙찰·리베이트 등 유통 혼란 키울 것"

부활 조짐을 보이는 '시장형 실거래가제'(저가구매 인센티브)의 부작용에 대한 성토도 이어졌다. 과거 2014년 도입됐다가 대형병원 쏠림 현상과 리베이트 논란 등으로 폐지된 제도를 정부가 인센티브율만 확대해 재도입하려 한다는 지적이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이 제도가 국공립병원 입찰에서 횡행하던 '1원 낙찰' 등 초저가 출혈 경쟁을 동네 의원과 약국으로까지 확산시킬 것으로 본다. 요양기관의 구매가 인하 압력이 거세지면 제약사는 정상적인 영업이 어려워지고 결국 판촉영업자(CSO)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다.

비대위는 "CSO가 급격히 팽창하며 현재 1만여 곳에 이르는 상황에서 과도한 가격 경쟁은 결국 음성적인 리베이트 수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를 운영했을 당시 제약사는 5397억 원의 손실을 보았지만, 인센티브 총액 3778억 원은 고스란히 요양기관의 수익으로 돌아갔을 뿐 R&D 선순환 효과는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비대위는 △약가 개편안의 일방적 추진 중단·전면 재검토 △개편안 시행 유예 △산업계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공식 협의체·거버넌스 구성을 요구했다.

비대위는 "제약바이오 산업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보건 안보의 최후 보루"라며 "정부가 수치상의 재정 절감에만 매몰되지 말고 산업 생태계 보존과 국민 건강권 보호라는 더 큰 가치를 바라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