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파마도 못 넘은 알츠하이머의 벽…K-바이오 '플랫폼 기술' 대안 부상

45조 시장 고성장 전망에도 임상 실패·개발 중단 고전
에이비엘·일리미스 플랫폼 부각…기술이전 가능성

에이비엘바이오 연구원이 연구를 하고 있다.(에이비엘바이오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빅파마(글로벌 제약사)조차 넘지 못한 알츠하이머의 높은 벽이 신약개발 전략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임상 실패가 반복되면서 기존 항체·화학약 기반 접근법의 한계가 뚜렷해지자, 업계의 시선은 약물을 뇌로 실어 나르는 '플랫폼 기술'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커지는 만큼 규제 수준과 안전성 기준도 더 높아지면서, BBB(뇌혈관장벽) 돌파와 약물 전달 효율을 확보한 기업만이 차세대 알츠하이머 치료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2033년 45조 시장 형성…빅파마도 신약개발 고전

2일 글로벌 제약바이오·헬스케어 연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치료제 시장은 2022년 42억 1000만 달러(약 6조 원)에서 2030년 160억 달러(약 24조 원)로 3배 이상 확대될 전망이다. 2033년에는 308억 달러(약 45조 원) 규모로 고성장세가 예상된다.

에자이·바이오젠의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며 시장이 새롭게 열렸지만, 더 높은 약효와 안전성을 갖춘 차세대 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앞다퉈 알츠하이머 신약개발에 나섰지만 연이어 고배를 마시고 있다.

존슨앤드존슨(J&J)은 막대한 R&D 비용을 들였음에도 임상 2상 등 주요 단계에서 인지기능 개선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해 일부 파이프라인을 사실상 축소했다. 비만 치료제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를 알츠하이머 적응증으로 확장하려던 노보노디스크 역시 3800여 명 규모의 임상에서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위고비가 비만·당뇨·지방간염(MASH) 등 대사질환에서는 강력한 치료효과를 보였지만, 뇌처럼 폐쇄적인 환경에서는 약물 전달 효율이 떨어지는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대표적 이유로 BBB를 꼽는다. BBB는 뇌를 보호하기 위해 외부 물질의 침투를 차단하는데, 일반 항체 치료제를 투여해도 약 0.1%만 뇌 병변에 도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용량을 투여할 경우 뇌부종(ARIA)이나 미세출혈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이 따른다.

알츠하이머 신약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뉴스1
에이비엘바이오 '그랩바디-B' 약물전달플랫폼 강자

업계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알츠하이머 신약 후보물질 자체보다, 약물을 뇌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DDS(Drug Delivery System)나 새로운 플랫폼 기술 확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러한 DDS 분야에서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이 회사의 이중항체 플랫폼 '그랩바디-B'는 뇌혈관 내피세포에 발현된 인슐린유사성장인자1 수용체(IGF1R)를 타깃으로 약물을 전달하는 기술이다.

기존 주요 DDS 플랫폼으로 꼽히는 '트랜스페린 수용체'(TfR) 방식은 뇌뿐 아니라 적혈구 등 다른 장기에서도 발현 비율이 높아 약물이 분산되거나 독성을 유발할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반면 에이비엘바이오가 사용하는 IGF1R은 뇌혈관에서의 발현율이 높고 반감기도 길어, 안전성과 투약 편의성 측면에서 TfR 대비 '계열내최고'(Best-in-Class)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앞서 그랩바디-B를 적용한 파킨슨병 신약 후보물질 'ABL301'을 사노피에 최대 1조3000억 원 규모로 기술이전하며 플랫폼 가치를 이미 입증했다. 업계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분야에서도 그랩바디-B에 대한 글로벌 제약사들의 수요가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일리미스테라퓨틱스가 개발한 '가이아'(GAIA) 플랫폼 작용 모식도.(일리미스테라퓨틱스 제공)/뉴스1
일리미스 '가이아' 염증 없이 알츠하이머 원인 제거

일리미스테라퓨틱스는 새로운 기전인 '이중융합단백질' 플랫폼 기술로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염증을 조절하면서 알츠하이머 원인 단백질을 제거하는 '가이아'(GAIA) 플랫폼 기술을 갖추고 있다.

퇴행성 뇌 질환인 알츠하이머는 아밀로이드 베타 응집이나 타우 단백질 과인산화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제약사 다수가 아밀로이드 베타를 타깃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가이아 플랫폼은 Fc수용체가 아닌 TAM수용체를 이용해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밀로이드 베타를 염증 없이 제거할 수 있다. 이 같은 특징에 기반을 두고 효능과 안전성이 높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알츠하이머 시장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존의 접근 방식만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지배적인 시각"이라며 "결국 승패는 BBB를 어떻게 통과하는가, 얼마나 안전한가 등에 달려있다. 이 두 가지 핵심 열쇠를 쥔 국내 바이오텍의 기술가치가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설명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