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표적 연구 가속도…'한국형 노화역전' 어디까지 왔나[노화역전의 꿈]⑨

정부·학계·산업계 삼각 협력, 한국형 노화역전 독립 분야로 부상
ReHMGB1·UPF1–NMD·PDK1 등 핵심 분자표적 규명 성과 잇따라

편집자주 ...노화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오는 시간의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제 과학은 그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묻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세포를 젊게 되돌리는 실험이 이어지면서, '노화 역전'이라는 개념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뉴스1은 이번 기획을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노화역전을 집중 조명한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서울=뉴스1) 장도민 기자 = 국내에서 '노화역전'(aging reversal)을 목표로 내건 연구가 속도를 내고 있다.

2024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알키미스트(Alchemist) 본연구 선정으로 '노화 역전' 트랙이 본격 가동되면서, 대형 국책과제가 장기·고위험 연구를 뒷받침할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다.

마침 최근 3년간 대학과 출연연구기관의 연구성과도 잇따랐다. 노화의 원인 경로를 세포·분자 수준에서 규명하는 논문들이 국제 학술지에 실렸고, 이를 응용하려는 산업계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기초 과학과 산업화 가능성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대형 국책과제 가동…5년·200억원 '노화역전' 본연구

산업부는 2024년 3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본연구 단계에 진입할 세 가지 테마를 선정했다. ‘노화 역전’은 그중 하나로, 과제당 5년간 총 200억 원 규모의 예산이 배정됐다. 매년 약 40억 원이 투입되며, 중간평가를 거쳐 연구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

주관기관은 성균관대학교이며, 서울대·아주대·원광대·한국교통대 등 10여 개 연구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산업계에서는 유한양행, 휴온스, 퍼스트랩, 강스템바이오텍 등이 멤버십 형태로 합류했다. 이들은 전임상 연구부터 평가 플랫폼 구축, 사업화 검증까지 단계별로 역할을 나눴다.

산업부에 따르면 프로젝트 전체에서 민간 투자금 100억 원 이상이 이미 유치됐다. 단순한 국비 매칭을 넘어, 산업계가 이 분야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신호다.

관계자들 사이에서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도전·혁신형 R&D'로 분류된다. 기존의 개량·응용 중심 연구와 달리, 장기간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는 난제 해결형 과제를 지원하는데, '노화 역전'이 이 범주에 포함된 것은 한국에서 항노화 연구가 명확히 독립 분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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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기전 성과 잇따라…ReHMGB1·UPF1–NMD·PDK1

최근 국내 연구진은 노화의 핵심 경로를 분자 생물학적으로 규명하는 성과를 잇달아 발표했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지난 6월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전옥희 교수팀이 Metabolism에 발표한 연구다. 이 논문은 노화세포가 분비하는 환원형 HMGB1(ReHMGB1) 단백질이 혈류를 타고 전신에 퍼져 다른 조직의 노화를 촉진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동물 실험에서 항-HMGB1 항체로 이 신호를 차단했더니, 근육 재생능력이 회복되고 노화 표지가 완화되는 결과가 나왔다. 전 교수팀은 "전신 노화를 하나의 축으로 제어할 수 있는 표적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설명했다.

올해 초 충남대·한국생명공학연구원·KAIST 공동연구팀은 Communications Biology에 발표한 연구에서 NMD(nonsense-mediated mRNA decay) 경로의 핵심 인자인 UPF1 발현이 세포노화 상태에서 감소하고, 이에 따라 불량 mRNA가 축적돼 노화 표지가 강화된다는 경로를 입증했다. 연구팀은 "UPF1 안정화나 NMD 기능 복원이 새로운 '역전' 전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응용 가능성이 높은 표적 연구도 있다. 아모레퍼시픽과 KAIST 공동연구팀은 PDK1 억제가 노화된 피부 진피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린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 기술은 피부 노화 개선 소재와 화장품, 의료기기 등에 적용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세 가지 표적 모두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노화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평가받는다.

산업화와 규제의 벽…평가체계 표준화가 관건

연구 성과를 산업화로 연결하기 위해선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먼저 효과 평가체계 표준화가 꼽힌다. 현재 각 연구팀은 생물학적 나이, 노화 표지, 재생능, 근력, 피부 장벽 등 다양한 지표를 통합한 측정 패널을 개발 중이다.

아울러 규제 과학 확립에 대한 필요성도 커졌다. '노화 역전'은 질병 치료와 달리, 효과 지속 기간·가역성·장기 안전성을 동시에 검증해야 한다. 국내외에서 이 분야에 특화된 임상 설계와 허가 가이드라인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산업계에서는 적응증별 경량 임상 프로토콜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피부·근골격·신경 등 부위별로 소규모 환자군을 대상으로 초기 임상을 진행하며, 바이오마커 변화와 기능 개선을 동시에 추적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디지털 바이오마커와 AI 기반 '생체시계' 측정 기술을 결합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학계에선 향후 2년이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ReHMGB1 GB1 차단제제F1–NMD 기능 복원 약물, PDK1 억제 기술이 전임상·초기 임상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한다면, 한국형 노화역전은 국제 무대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j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