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 건강 유지, 무엇을 어떻게 먹을까[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고령자 건강에 필요한 10가지 일상이 있다면 먹는 것에 절반 이상의 무게를 두고 싶다. 먹는 일은 생존을 넘어 건강과 즐거움, 마지막까지 존엄을 지탱하는 삶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먹다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옛말에도 잘 먹는 것을 큰 복으로 여겨온 마음이 담겨 있다. 좋아하는 음식을 각자의 씹고 삼키는 능력에 맞게 준비하고,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충분히 먹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고령자 건강 유지의 기본이다.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할 때 우리는 무엇을 드시면 좋을지 묻는다.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과 보양식을 찾지만, 정작 그 음식을 편안하게 씹고 안전하게 삼킬 수 있는지는 놓치고 있다. 삼킴 장애는 중증 환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3년 발표된 국내 연구에서 한 도시의 지역사회 거주 65세 이상 고령자 415명을 평가한 결과, 삼킴 장애 유병률은 33.7%였다. 같은 해 발표된 국내 요양시설 두 곳의 고령자 395명 대상 연구에서는 52.7%였다. 전국 고령자의 현재 유병률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일상과 돌봄 현장에서 삼킴 문제를 적극적으로 찾아야 함을 보여준다.
나이가 들면 치아와 침, 혀와 목의 근육 기능이 변하고, 뇌졸중·파킨슨병·치매가 더해지면 식사는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식사 중 반복되는 사레, 삼킨 뒤 젖은 듯한 목소리, 입안에 남는 음식, 길어지는 식사 시간은 삼킴 장애의 위험 신호다. 기침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음식물이 기도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 사레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 먹는 불편을 방치하면 고령자 사망 원인 3위인 흡인성 폐렴, 섭취량 감소와 영양 불량, 탈수로 이어질 수 있다.
삼키기 불편하면 죽을 끓이거나 반찬을 잘게 다지면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잘 씹히는 음식과 안전하게 삼킬 수 있는 음식은 다르다. 다진 고기는 입안에서 흩어질 수 있고, 국에 만 밥은 국물과 밥알을 함께 조절하며 삼켜야 한다. 물을 많이 넣은 묽은 죽만으로는 충분한 에너지와 단백질을 얻기 어려워 영양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연하식'은 개인의 씹고 삼키는 능력에 맞춰 음식의 부드러움과 걸쭉함, 조각의 크기를 조절한 식사다. 삼킴 기능을 평가해 형태를 정하고, 먹을 수 있는 양 안에 필요한 영양을 담아야 한다. 섭취가 부족하면 의료진과 임상영양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국제 연하식 표준화 이니셔티브(IDDSI)의 분류 체계는 음식과 음료를 여덟 단계로 구분한다. 정해진 방법으로 흐르는 정도와 으깨지는 정도, 조각의 크기 등을 확인한다. 가족에게 중요한 것은 숫자를 외우는 일이 아니라 고령자에게 맞는 식사를 준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고령 친화 식품도 모든 고령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음료를 걸쭉하게 만드는 점도증진제 역시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적절한 농도로 사용해야 한다. 걸쭉하다고 폐렴 예방이나 충분한 수분 섭취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음식을 조절한 뒤에도 실제로 얼마나 먹고 마시는지, 불편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먹는 자세와 속도 역시 연하식만큼 중요하다. 몸을 안정적으로 지지하고, 맞춤형 한입의 양을 제공하며, 먹는 속도와 삼킨 것을 확인한 뒤 다음 음식을 드려야 한다. 치아와 틀니, 혀를 청결하게 관리하고 구강 건조와 통증을 살피는 일도 식사 지원에 포함돼야 한다.
가족과 요양보호사에게 연하식 조리와 제공 방법을 교육하는 일도 필요하다. 같은 이름의 죽이나 다진 반찬이라도 조리법에 따라 질감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눈대중에만 맡기지 않고 정해진 방법으로 확인하며, 제품을 사용할 때는 표시된 조리 조건을 지켜야 한다. 병원마다 다른 식사 명칭을 표준화하고 퇴원 후에도 이해할 수 있는 안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하식을 준비하는 시간과 비용, 식사를 돕는 인력까지 돌봄의 자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먹는 문제를 가족의 정성과 책임으로만 남겨둬서는 안전하고 지속적인 식사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지역사회 돌봄은 도시락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얼마나 드셨고 무엇을 남겼는지, 왜 먹기 어려웠는지 확인해야 한다. 퇴원할 때도 음식 형태와 음료 농도, 식사 보조와 구강 관리 방법을 가정으로 전달해야 한다. 의료진과 영양사, 재활·구강 관리 인력, 돌봄 제공자가 연결돼야 병원의 연하식이 집에서도 이어진다.
안전하게 먹는 일은 즐겁게 먹는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노후의 식탁을 지키는 질문도 '무엇을 드셨나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드셨나요, 불편하지는 않으셨나요'로 이어져야 한다. 그 질문이 영양과 존엄을 함께 지키는 통합돌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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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자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