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잘 먹어야 한다[김현정의 준비된 노후]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편집자주 ...필자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에서 뇌신경과학 분야를 연구한 학자이자 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으로 의료계와 학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의학과 치의학의 경계, 장애인 치과, 지역사회 구강돌봄의 현장에서 건져 올린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칼럼을 연재할 예정입니다. 은퇴 후 황금 노후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에게 건강한 노후, 슬기로운 노후 준비를 위한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김현정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교수(대한디지털헬스학회 이사장)

나이가 들어 아무리 충분한 자산과 좋은 생활환경을 갖추더라도 스스로 먹지 못하면 건강과 일상생활의 자립을 유지하기 어렵다. 잘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다. 음식을 씹고 안전하게 삼킬 수 있어야 하고,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하며, 자신의 질환과 건강 상태에 맞는 음식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먹고 싶은 마음도 건강의 일부다

노년기에는 배우자나 가족과의 사별, 은퇴, 사회적 관계의 감소, 만성질환 등으로 우울감과 외로움이 커질 수 있다. 마음이 지치면 입맛이 떨어지고, 장을 보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일도 귀찮아진다. 혼자 먹는 식사가 반복되면 끼니를 간단히 때우거나 아예 거르는 일도 늘어난다.

식욕 저하는 영양 부족으로 이어지고, 영양 부족은 근육량과 체력 감소, 면역력 저하, 낙상과 감염 위험 증가로 연결된다. 몸이 약해지면 외출과 사회활동이 줄어들고, 고립과 우울감은 다시 심해진다. 정신건강 악화와 영양 부족이 서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식사량이 줄거나 체중이 감소했다면 단순히 나이 탓이나 입맛의 문제로 넘겨서는 안 된다. 우울감과 불면, 약물 부작용, 인지기능 저하,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특히 한두 달 사이 옷이 헐거워지고 냉장고가 비어 있거나, 식사 준비를 포기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가족과 주변 사람이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할 기회를 만들고 지역사회의 공동식사나 노인복지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함께 먹는 밥은 영양을 공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관계와 정서를 회복시키는 돌봄이 될 수 있다.

부산 부산진구노인장애인복지관에서 7월 13일 열린 '제11회 초복맞이 1만그릇 삼계탕 나눔' 행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을 배식하고 있다. (뉴스1DB) ⓒ 뉴스1 윤일지 기자
치아와 입이 건강해야 끝까지 먹을 수 있다

먹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치아와 잇몸이 아프거나 입이 마르고, 씹고 삼키는 기능이 저하되면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기 어렵다. 노년기에는 치아 상실, 충치, 치주질환, 맞지 않는 틀니, 구강 건조와 구강 노쇠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러 약을 함께 먹는 고령자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침 분비가 감소하기도 한다.

삼키는 기능이 저하되면 음식이나 침이 기도로 넘어가는 흡인 위험도 커진다. 입안의 세균과 염증성 물질이 함께 폐로 흡인되면 흡인성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구강 관리는 단순한 위생관리를 넘어 전신건강 안전 지킴이로 이해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치아와 잇몸, 틀니와 구강 건조 상태를 점검하고 씹기와 삼키기 기능의 변화를 살펴야 한다. 식사 중 기침이나 사레가 자주 들고, 음식이 목에 걸리는 느낌이 있거나 식후 목소리가 젖은 듯 변한다면 삼킴 기능 평가가 필요하다.

무엇을 어떻게 먹을지 판단하는 힘

건강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판단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영양문해력은 영양 지식을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다. 식품 표시와 건강정보를 이해하고 자신의 질환, 복용 약물, 구강 기능, 경제적 여건에 맞는 음식을 선택해 실천하는 능력이다. 제품 앞면에 표시된 '건강한', '무첨가', '천연'이라는 표현만 믿기보다 뒷면의 영양 성분표와 1회 섭취량을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광고에서 강조하는 특정 성분 하나보다 하루 전체 식사의 균형과 지속 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고령자의 식사는 보건복지부와 한국영양학회가 마련한 '2025 한국인 영양소 섭취기준'(섭취기준)을 기본으로 하되 질환과 노쇠 정도, 근감소증, 구강 기능과 삼킴장애 여부 등을 고려해 개인별로 조정해야 한다. 섭취기준은 탄수화물의 에너지 적정비율을 기존 55~65%에서 50~65%로 낮추고, 단백질은 기존 7~20%에서 10~20%로 하한을 높였다. 또한 노년기를 65~74세와 75세 이상으로 구분해 성·연령별로 에너지와 영양소 섭취기준을 제시했다.

특히 고령자는 충분한 단백질과 다양한 식품을 섭취해 근육량과 신체기능을 유지하되, 신장질환이나 간질환 등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의료진과 영양전문가의 평가에 따라 섭취량을 조절해야 한다. 아울러 총당류는 총에너지 섭취량의 20% 이내, 식품의 조리·가공 과정에서 첨가되는 첨가당은 10% 이내로 제한하고, 첨가당의 주요 급원인 가당음료의 섭취는 가능한 한 줄이도록 권고하고 있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식사 중 기침이나 사레가 자주 들고, 식후 목소리가 젖은 듯 변하거나 음식물이 입안에 오래 남는다면 단순히 음식의 양만 줄여서는 안 된다. 먼저 삼킴 기능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음식과 음료의 점도와 질감을 안전하게 조절해야 한다. 섭취량이 감소하지 않도록 적은 양으로도 충분한 영양을 얻을 수 있게 단백질과 열량을 강화한 식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건강보조식품을 먹었으니 괜찮다'는 심리적 의존도 내려놓아야 한다. 필요한 경우에 부족한 영양소나 특정한 의학적 필요를 보완할 수는 있지만, 건강한 식사를 대신하지 못한다. 식사의 기본은 다양한 자연식품을 통해 단백질과 식이섬유, 비타민과 무기질, 건강한 지방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다. 한번에 많이 먹기 어렵다면 세 끼만 고집하기보다 우유나 요구르트, 두유, 삶은 달걀, 치즈, 과일과 같이 영양가 있는 간식을 활용할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식사는 영양을 공급하는 행위를 넘어 삶의 즐거움과 인간관계를 지탱하는 핵심 활동이 된다. 가족과 함께 밥을 먹고, 친구와 음식을 나누며, 익숙한 맛과 향을 느끼는 일은 신체건강뿐 아니라 기억과 정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중요하다. 결국 잘 먹는 능력은 정신건강과 구강건강, 영양문해력이 함께 뒷받침될 때 오래 유지될 수 있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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